“이사장은 빵을 파는 사람” 강조 공단 혁신 1세대
‘환경家의 청백리’ 환경관리공단 이만의 이사장이 지난 달 4일 집무실을 떠났다. 대쪽 같은 관리로 30여 년의 공직을 마무리한 그는 “마지막 공직생활이 환경 쪽에서 이뤄져 행복하다”고 했다. 목포시장을 비롯한 제주부지사, 광주 부시장을 거쳐 내무부와 행자부의 주요 요직을 두루 섭렵한 그는 제6대 환경부 차관으로 발탁돼 1년간 환경부에 몸담은 바 있다. ’03년 5월 환경관리공단 이사장에 취임한 그는 “엔지니어는 빵을 만드는 사람이고, 이사장은 빵을 파는 사람”이라며 능동적 변화에 기반을 둔 CEO형 공단 만들기에 주력해 왔다.
이를 위해 유독 그가 강조했던 것은 높은 수준의 기술과 품질, 그리고 우수한 인력이었다. 공단 직원들은 기술사, 박사학위가 없으면 승진인사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때부터 관리 · 감독기관이란 ‘높은 성곽’에서 운신하던 공단문화에 미묘한 긴장감이 시작됐다. 공단 직원이라면 누구나 경영혁신과 조직활성화를 위해 제안자가 됐고 지방지사에서 야간대학원을 다니는 직원들이 생겨났다. 짧은 연혁도, 환경부 산하기관이란 태생적 한계도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을 듯 했다.
이만의 이사장은 취임 후 본지와 가진 인터뷰(2003.11)에서 “공단은 정열과 도전적 기백이 부족하다” 며 “외부로는 경쟁의식을 갖추고 내부로는 직원에 의한 활성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주지한 바 있었다.
퇴임식이 있던 지난 4일 공단에서 다시 만난 李이사장. 온화한 인품이 평온하게 묻어나는 그의 외면에도 분명 만감이 교차하고 있는 듯 했다. 李이사장은 “퇴임기념으로 지인으로부터 서류가방 하나를 선물 받았다”고 했다. 술 한 잔, 골프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3년을 뛰어다니며 밑이 구멍 나버린 그의 서류가방만 3개째였다.
온화한 인품에 깃든 뚝심과 정절
“누가 뭐라 해도 양심과 神 앞에 떳떳할 수 있도록 공직을 수행한 것, 지금까지 대과(大過)없이 최선을 다해왔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그의 퇴임 일성은 이러했다. 이만의 이사장은 모르는 게 많은 사람이었다. 불의와 타협할 줄 몰랐고, 원칙과 약속을 저버릴 줄 몰랐다. 대숲처럼 사철 푸르렀지만 그래서 한편으론 서늘함이 깃든 그늘의 쓸쓸함을 떠안아야 했을지 모른다.
그는 “공단이 많은 사업을 수행하고 있지만 투명함을 원칙으로 하면 불합리한 일이 있을 수 없다. 각종 음해성 정보가 난무하면서 맘고생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청정 환경관리공단을 지켜가야 한다는 원칙만은 변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능력과 자질’이란 원칙으로 인사를 진행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좌절을 안겨야 했던 직원들에 대한 안쓰러움 역시 떠나는 그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듯 했다. 그는 “직원들과 스킨쉽을 강화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공단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후임 이사장이 잘 풀어나가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미처 자리를 정리하지 못한 채 그가 토로한 아쉬움은 또 있었다. “절대 다수가 각 분야의 전문가다보니 기술을 묶어서 제공하는 마케팅이라든지 문화적 상품화 과정이 너무 삭막했다. 또 공단 문화란 것이 불투명해 감칠맛 나는 서비스도 제공하는데 부족했다는 생각도 든다” 李 이사장은 “공단의 기술이 업그레이드되고 우수한 박사급 인력이 확충된 것이 성과라면 각 분야의 기술 전문가들이 조화로운 기술융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되짚었다.
“환경의 전도사로 사회에 서비스하는 일 할 것”
“수익 사업이 아닌 환경을 콘텐츠로 하는 문화적 이벤트로 사회에 서비스하고 싶다”
향후 환경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환경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환경전도사’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이만의 이사장.
퇴임 이후에도 환경에 대한 그의 외사랑은 계속될 예정이다. 환경대학의 출강은 물론 기독교 수목장 확대 및 숲가꾸기 운동, 환경·문화 포럼 구성 등 “더 바빠질 일이 많다”고 한다. 퇴임과 더불어 최선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고 있다는 李이사장.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야인으로 돌아온 홀가분함도 없지 않은 듯 했다. 그는 “내 양심과 내가 믿는 신 앞에 최선을 다했느냐가 ‘최선의 기준’” 이라며 “그 최선을 다해 행복하다”고 말했다.
“행복의 조건을 단순하게 하고 사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행복의 조건이 많아질수록 불행해 지는 길이지요”
덧붙여진 이 한 마디는 때로 지친 어깨가 되어 그를 만날 때, 내게 늘 심어주던 인생 선배로서의 마지막 충고이기도 했다.
취재/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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