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륜차, 일본 소음기준 보다 훨씬 강화
내가 대기국 교통공해과장(’80. 10~’85. 4)에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82년 9월 벨지움 Gent Univ.에서 환경관리 분야를 연수받고 귀국하기 일주일 전쯤이었다. 뜻밖에 일본 환경청 나까지마 사무관한테서 한 장의 전보가 내 기숙사로 날아왔다.귀국할 때 주요한 업무협의가 있으니 꼭 일본에 들려 만나자는 것이다. 나까지마 사무관은 ’80년에 1년간 우리 청 교통공해과에서 자문관으로 일하다, 귀국한 분으로서, 당시 자동차배출가스허용기준을 선진국 수준(미국)으로 강화하는 계획 대문에 이 분야에 경험이 제일 풍부한 일본 전문가를 WHO자금으로 우리나라에 파견 해옴에 따라 나와 함께 근무한바 있다. 이 친구는 일 때문에 장가를 안간 노총각으로 일본의 전형적인 일벌레이며 아주 성실한 사람이었다.
내가 거주하던 Gent 시에서 기차로 두 시간 거리의 벨지움 수도 브르셀의 일본 대사관을 찾아가 비자를 받아서 귀국하는 도중 일본의 도쿄에 들려 우선 환경청을 찾아갔다. 나까지마가 반갑게 맞아주고 일본 교통공해과장 등 관계관들과 공식적인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나는 도쿄 중심가 Sunshine빌딩 꼭대기 조용한 양식집에서 나까지마 사무관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정색을 하고 본론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야기인즉 한국의 이륜차는 주요부품 전량을 일본에서 수입해 가는데 일본 소음기준(배기)보다 훨씬 강화시켜 놓았으니 이젠 일본 이륜차를 못 팔 것 같을 뿐 아니라, 국제적 분규가 생길 것이라며 은근한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D-혼다, H-스즈끼 두 회사 모두 주요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하여 조립형태로 만들고 있었으므로 실제는 일제와 다름없는 것이었다. 특히 엔진분야는 그랬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배기소음허용기준이 이미 고시되어 경과 조치기간이 지나면 곧 시행될 단계인 것이었다.
강화된 배기소음기준 맞춘 이륜차 제작 현실 불가능
아마도 일본 업계에서 강력한 로비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귀국해서 잘 알아보겠다 하고 회식을 끝내고 며칠 동안 일본에 머물면서 우수한 자동차 공해연구소를 두루 살피고 귀국했다.
일본은 처음 방문이었는데 톱니 같은 사회에 큰 감명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모든 분야에서 몇 십 년은 뒤떨어졌구나 하는 허탈감을 갖고 귀국한 것이 그 당시 솔직한 심정이었다.
귀국해서 우선 그 문제부터 검토하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이륜차의 D회사 L모 간부가 나한테 찾아와서 일본에서 듣던 얘기하고 똑같은 얘기를 하고 가면서 “아마 과장님 그 자리에 오래 못 있을 겁니다”하고 은근히 겁을 주고 나가는 것이었다. 사실 D회사 사장의 큰 형님이 그 당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실세 국회의장 L씨였던 것이었다.
내용을 파악해보니 실상 세계에서 가장 강화된 배기소음이며 그 정도 이륜차는 현재 만들기가 어려운 실정인 것이었다. 문제는 기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써 신차, 사용 차(이륜차)의 소음 실측까지 자료와 문헌수집 등의 과정에서 제작 회사와 전문가의 적절한 협의가 없었으며, 특히 우리 측에서도 Safety margin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잘못이 있었다.
그래서 이 기준을 다시 재검토하였다. 이번에는 직접 우리 과에서 개입하고 환경연구원 관계자와 관계회사의 적극적인 협조로 자료를 확보하고 신차와 사용 차의 샘플을 늘려서 실측하면서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 물론 교수 등 전문가의 자문도 받았다.
새로운 기준 재정에도 불구, 세계서 최고 강화된 기준
그러나 그렇다고 일본 기준과 똑 같이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기준을 정하고보니 그래도 세계에서 최고 강화된 기준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두 회사에서 수용하겠다는 비공식 의견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엔 엄격하기로 이름난 박준익 청장께 실행해 보지도 못한 배기소음허용기준을 번복하여 결재를 받는 일이 난감한 것이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청장님께 이실직고한 후 새 고시안을 내밀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번 눈을 크게 뜨시더니 “아니 시행도 안 해보고 고시를 개정해!”하시곤 한참 눈을 지그시 감고 계시다가 아무말씀 없이 사인을 해주시면서 “그러기에 처음부터 잘 검토해야지!”하시는 것이었다. ‘휴! 저 양반이 저렇게 너그러울 때도 있군.’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우리나라의 가장 고질적인 졸속행정의 본보기를 내가 저지른 것이었다. 그때 새삼 깨달은 것은 규제행정은 신중하여야겠다는 것이다. 필요한 업계뿐만 아니라 관련된 모든 분야와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나에게 큰 교훈이 되어 지금 학교에서 후배들에게 환경정책을 강의할 때마다 빼놓지 않는 졸속행정경험의 단골메뉴가 되고 있다.
주 수 영
당시 교통공해과장
'67년 4월 보사부 위생국쪾환경관리실을 시작으로 환경청 교통공해과장, 환경처 정책심의관을 거쳐 '99년 3월 국립환경연구원장을 역임, 32년간 오랜 공직생활을 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환경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연세에코센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저작권자ⓒ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