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행정에 도입한 것이 ‘환경 분야’
우리나라 환경규제정책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은 배출부과금제도의 도입이라 할 수 있다. 환경규제를 위한 경제적 유인책의 초기적 형태로 1981년 말 개정 환경보전법에 도입되어 1983년 9월부터 시행된 배출부과금제도는 이후 수차례의 개정을 거쳐 변모해왔다.
배출허용기준초과분에 대한 부과금을 부과하던 제1기, 1991년 대기·수질환경보전법의 개정이후 위반업소에게 기존의 배출부과금에 업체의 규모에 따른 차등적인 종별 기본부과금을 추가로 부과하는 형태의 제2기, 그리고 제3기는 1996년 법개정이후 1997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현재의 기본부과금과 초과배출부과금 병합부과 형태로 변천되어 왔다.
배출부과금제도의 의미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이 제도가 터 잡고 있는 경제적 유인책의 개념을 우리나라 행정에 도입한 것이 바로 환경 분야라는데 있다.
이러한 경제적 유인책을 규제정책에 도입하는 것이 규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선진국의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해서 1970년대부터 제기되고 있었지만, 적정한 부과기준을 산정하고 집행하는데 있어서의 기술적?정치적 장애가 많아서 실행에 옮긴 나라가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에 이 제도를 도입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당시 법무관이었던 윤서성 前 차관이다.
당시에는 환경행정 수행에 근간이 되는 환경보전법을 통합·관장할 실무부서가 없었고, 법령의 해석과 제·개정에 익숙한 인력도 부족하여 법무관실에서 환경보전법의 개정작업을 총괄하고 있었기에 1981년 개정시에 이름도 생소한 부과금제도를 이 땅에 소개한 공은 당연히 윤 前 차관에게 돌아가야 한다.
사실 초기의 배출부과금은 기준초과에 대한 벌과금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기준을 초과해서 배출하는 오염물질 배출량에 따라 산정해서 부과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상대적 이득을 국가·사회에 반환하기 위한‘벌과금’성격
종래 기준을 초과하던 배출시설들에게 개선명령이나 이전명령이 내려진 경우에 부여되던 이행기간 중에는 기준준수가 유예되는가에 대한 법령질의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적지 않게 접수되었다.
당시 환경청 법무관실에서는 ‘최선의 방법으로 오염물질을 저감하도록 할 것’이라는 다소 애매한 표현으로 회신을 했으나, 기준 준수여부를 감독하던 자치단체나 담당직원의 재량에 따라서는 개선·이전명령이 이행기간 동안의 기준초과를 합법화해주는 면죄부(?)가 되곤 했다.
사실 현장에서는 그러한 상황을 악용하여 개선과 이행명령 이행을 최대한 늦추면서 경제적 이득을 보려는 업체와 단속 공무원간의 담합이 중앙정부와 검찰 합동단속반에 적발되어 문제가 된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고는 선량하게 법과 기준을 지키는 배출 업체들이 어떤 사정으로 인해 기준을 지키지 못하는 업체보다 기준 준수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을 상대적으로 추가 부담하게 되는 불합리가 발생되었던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고안되어 동원된 것이 바로 초기의 배출부과금이다.
기준을 지키지 못해 개선이나 이전을 명령받은 사업자가 조업을 중지하거나 제한하여 기준을 지키던가, 아니면 기준이상의 초과배출을 통해 얻게 되는 상대적 이득을 국가와 사회에 반환하기 위한 벌과금 성격의 부과금을 배출한 오염물질의 양에 따라 납부하도록 선택하게 했던 것이다.
시행상 정치적지지 결여와 기술적 문제가 제도도입의 걸림돌
개념도 낮 설고 그러한 유형의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분야도 없어 법령을 심사하던 법제처의 당시 이세훈 법제관도 상당히 곤혹스러워했고, 당연히 현 산자부의 전신인 상공부도 기업의 과중한 부담을 이유로 반대했지만, 이 제도는 성실히 법을 지키는 배출업체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서 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불성실한 업체에 대한 확실한 제재가 기준준수를 유도할 수 있다는 논리로 설득해 나갔던 것이다.
어렵사리 행정부 내의 협의를 거치고, 국회의 상임위를 거쳐 법령의 제도화에 성공한 것이 1981년 12월 말이었다. 문제는 법령상 도입된 배출부과금제도를 어떻게 신설하고 구성할 것인가를 정하는 시행령·시행규칙 작업이었다.
선진외국에서도 경제적 유인책을 채택하는 것이 환경규제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데는 이론이 없었지만, 시행상의 정치적지지 결여와 기술적인 문제가 이 제도의 도입을 어렵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제도를 이 땅에 상륙시킨 윤 前 차관은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1년여의 기간동안 연수를 가게 되고 후속작업은 다시 법무관실로 떨어졌고, 부과방법이나 부과율설정에 필요한 작업을 부담으로 받아들인 실무국에서는 배출부과금 제도를 도입한 사람들이 후속작업에 대한 책임도 져야한다느니, 제도도입 자체가 무리였다느니 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당시 행정 사무관으로 사실적으로 법무관직을 담당하고 있던 본인은 선진외국의 문헌을 샅샅이 뒤져본 결과 참고할만한 제도는 일본의 건강피해보상제도와 미국 매사추세츠 주정부의 환경규제프로그램초안 정도 밖에 없다고 판단하였다.
명령·강제 아닌 경제적 부담 통해 환경개선 가능한 확신 심어줘
일본의 경우 당시 공해병으로 인한 피해보상금을 충당하기 위한 재원확보를 위해 오염물질 배출업체의 부과금을 산정하는 기준을 참고할 만 했고,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정부에서 기준초과배출에 대한 벌금을 부과하려던 제도가 우리나라 배출부과금제도와 그 모습이 가장 유사하여 그 부과에 대한 경제적 기초와 근거를 작성하는데 좋은 참고가 되었다.
환경부 실무국에서의 협조는 거의 전무한 상태였고, 시행을 위해 6개월 내에 끝내야 하는 후속 법령작업은 1년여를 경과하고 있었다. 이 때 부과금 산정공식 완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당시 대기국의 고윤화 사무관이었는바, 그는 당시 부피를 질량으로 환산하는 아보가드로 공식을 사용하여 실질적으로 대기·수질분야 부과금 산정공식을 만들어 내는 수훈을 세웠다.
우여곡절 끝에 법이 제정된 지 17개월만인 1983년 8월 1일 시행령이 마련되어 징수를 개시한 배출부과금은 환경오염방지기금으로 적립되었고, 이 기금은 후에 환경관리기금으로 전환되어 환경관리공단이 발족하는데 초석이 되었고 이후 환경특별회계에 통합되었다.
배출부과금은 1990년대에 들어 환경부가 도입한 환경개선부담금·폐기물예치금·폐기물부담금·쓰레기종량제·수질개선부담금·물 이용부담금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유인책들의 기본개념을 제공하고, 환경정책수립자와 피 규제대상인 배출업체·국민들에게 종래의 “명령과 강제”가 아닌 경제적 부담을 통해 환경개선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선구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 이선룡
당시 법무담당관실 사무관 / (주)부강테크 회장
환경청 대기제도과, 환경청장 비서관을 거쳐 환경처 법무담당관, 지구환경과장, 정책총괄과장으로 일했고, 환경부 대기정책과장, 대통령비서실 파견근무를 한 바 있으며, 환경공무원교육원장, 공보관, 금강환경관리청장 역임하는 등 ’87년 5월부터 2000년 7월까지 14여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현재 (주)부강테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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