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소장의 ‘환경이야기’

독도를 위한 변명
박병상 | eco@ecomedia.co.kr | 입력 2005-05-24 11:3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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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살’을 아시나요? 텔레비전 사극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정적 또는 요부들의 은밀한 행위, 경쟁자의 술잔에 독을 풀어 넣는 독살(毒殺)이 아닙니다. 독살은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옛날 조상들은 돌을 독이라고 말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바닷물이 들어올 때 해안에 돌무더기를 쌓았다가 바닷물이 썰고 난 후 갇힌 물고기를 잡는 방식을 조상들은 독살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새만금 주변에 가면 그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독살은 요즘 뉴스에 부정적으로 나오는 쌍끌이 선단의 싹쓸이 어업과 다릅니다. 어린 물고기는 돌 틈으로 충분히 빠져나가 어족자원을 지금처럼 훑어내지 않습니다.
일제는 강점기 동안 이 땅의 이름을 한자말로 억지로 고쳤습니다. 인천공항 앞바다에 있는 대무의도는 한자말로 무당이 입는 큰 옷을 의미합니다만 백성들이 볼 때 터무니없었을 것입니다. 바닷물이 밀고 썰 때 큰물이 든다고 해서 ‘떼물이섬’이라 했는데, 그걸 일제는 대무의도로 개칭했으니까요.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로 말하며 죽도(竹島)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온통 바위섬인 독도에는 자생은커녕 대나무를 심어 키우기도 어려운데 그들은 왜 근거도 없이 다케시마라고 요즘 고집할까요. 재미있는 민속학적 해석을 소개합니다.
양반네들이 쓰는 독도(獨島) 대신 백성들은 그저 독섬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독섬, 일본인들이 발음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도쿠시마로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도쿠시마를 그들 마음에 드는 한자말로 대치하려니 다케시마가 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어떤 학자의 주장을 제가 아는 분께서 말씀하셔서 재미있게 들었는데 과연 그럴싸합니다. ‘다케시마의 날’ 지정은 우경화되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은 일본 시마네현 극우 정치인들의 유치한 정치적 놀음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제게 감당할 수 없는 우리의 반응은 지나치다못해 졸렬해 우울합니다. 그럴 때 들은 인류학적 해석은 잠시 유쾌하게 했습니다.
팩스로 제출한 사직서를 근거로 명예교수직이 결국 파직된 전 고려대학교 한승조 교수는 스스로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만, 아직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그는 자신의 주장을 아마 번복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이후 한 교수의 발언을 옹호한 군사평론가 지만원 박사 때문에 우리 사회는 다시 뜨거웠고, 지 박사와 치열한 설전을 벌인 시사평론가 진중권 교수와 정통보수를 자부하는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다시 매스컴을 달구었습니다. 독도 문제는 그런 분위기에서 벌어졌습니다. 일제 침략을 긍정적으로 해석한 두 학자는 시마네현의 해프닝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요.
최근 언론 매체에서 만난 한 평자는 민족주의로 치장한 국가주의를 걱정스레 바라보며 “독도는 원래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것”이라고 신선하게 주장합니다. 나아가 그는 이어지는 독도 관광지 개방과 개발논리에 대해 “자연의 섬인 독도를 인간의 탐욕과 국가주의적 논리로 ‘소유’하는 것은 온당치 않으며, 오히려 자본과 국가의 개발과 팽창 논리로부터 이 아름다운 섬과 바다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속시원하게 강조합니다. 그의 주장은 먹구름 속의 한 줄기 햇살 같아 반가웠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 게재된 다른 평자의 글도 반가웠습니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광화문 일대, 수백만 인파가 모여 환호했던 붉은악마 현상을 ‘축제의 즐거움’보다 ‘광기의 발산’으로 해석한 그는 수백만이 하늘을 찌른 ‘대한민국!’ 연호는 ‘국가주의적 배타성의 스포츠적 발산’으로 우려합니다.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연호를 “공인된 적대감과 광기”로 해석하면서 대다수 민중의 이익과 무관한 “일본극우파시즘 세력들과, 그들과 본질에서 전혀 다르지 않는 우리들 내부의 파시스트들”을 동시에 경계합니다. “권력과 자본 시스템에 노예가 되어 있는 국가주의 세력들”이 주도하는 영유권 분쟁은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는 맹목적인 자본주의 동맹자의 도발이라고 진단합니다.
언론과 인터넷 공간에 나타난 두 평자의 목소리는 국가경제가 유난히 강조되는 요즘 세상에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대로 영원할 수 있도록 일본이든 대한민국이든 제발 독도를 내버려두자!”는 호소와 “국가주의와 군국주의라는 더러운 명분으로 독도를 짓밟는 어리석음에 동참”하지 말자는 절절한 당부는 알려진 학자나 전문가의 발언이 아닌 까닭에 일반인들의 귀에 옳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갑자기 양산된 섣부른 애국자들의 언설이 광기어린 세상에서 어지러움을 한껏 발휘합니다. 나도 모르게 “대한민국!”을 외치고 싶습니다. 외신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나깨나 외치던 ‘선진국!’ 타령을 누군가 열등감의 소산이라고 평했습니다. 외신의 눈치를 살피며 목 놓았던 “대한민국!”은 좀 부끄러웠습니다. “독도는 우리땅!”은 아니 그럴까요.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보다 일본인 출입금지를 붙여놓는 식당과 골프장에 초점을 맞추는 언론을 보며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일본과 서방 언론의 향배에 일희일비하는 태도에 속이 매식거립니다. 분신과 화형, 할복과 단지로 핏대 세우기보다 상대의 의견을 들으며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냉정한 노력이 이 지경보다 낫겠지만, 지금까지 스스로 그러했던 외로운 독도를 파도와 잘 어울리는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들이 자유롭도록 그냥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는 것일까요.
일제의 지배가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었다는 논리는 필연적으로 개발, 따라잡기, 지엔피 2만불, 선진국, 밑도 끝도없는 초일류국가로 이어집니다. 속도와 탐욕으로 무장하고 후손의 자원을 갈취하며 자연을 돌이킬 수 없도록 오염시킵니다. 자신만 잘 살겠다는 경쟁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서 볼 수 있듯이 전쟁도 불사하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고 후손의 생명을 위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자연은 몹쓸 지경으로 몰려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구 생태계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우울한 징후가 내일의 목을 조르는데 우린 무엇을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까요. 독도다 다케시마다 싸우기보다 자연에 기대 살아야 할 후손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행동에 우리와 일본이 함께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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