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각을 단순 논법으로 몰아가지 말자. 대한이 소한보다 춥지 않다면 대한이라고 말했을 리 없다. 조상이 대한이라 명한 이유가 있을 터. 예나 지금이나 예상과 다른 날씨는 늘 있는 법, 일상적인 현상에 기억은 누구나 오래 두지 않는다. 최근 날씨가 하수상해서 그렇지, 대한은 소한보다 원래 추웠을 것이다. 이번 대한은 기특하게 따뜻했던 이번 소한에 비해 훨씬 추웠다. 한마디로 대한다운 날씨였다.
무려 그것도 영하 17도까지 내려간 설날 아침, 차례 준비로 바쁜 틈에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아파트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보았다. 모처럼 살을 에듯 쌀쌀한 겨울 날씨다. 전방에서 졸병으로 박박 길 때 늘 감내해야 했던 뼛속까지 시린 혹한, 제대날짜만 손꼽았던 춥고 배고팠던 시절에서 20여 년이 지난 요즘, 겨울다운 겨울을 잊었다.
아침에 마시려고 받아둔 물주전자가 꽝꽝 얼었던 대학 시절, 겨울에는 두툼한 옷을 집안에서 꼭 입었는데, 내의가 불필요한 아파트에서 맞은 이번 설날 아침의 코끝 시린 날씨는 파란 하늘과 잘 어울려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역시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
이번 초겨울, 주말 텔레비전 뉴스에 비친 계절은 참 혼란스러웠다. 자락마다 꽃봉오리를 환하게 드러낸 개나리 진달래 무리로 산을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겨울을 선사하고 있다고 취재기자는 호들갑떨었지만, 사실 이번과 같은 계절의 흐름은 생태적으로 적잖게 심란한 현상이었다. 꽃봉오리 한두 송이가 철모르게 벌어지는 일이야 전에도 심심지 않았지만, 이번 초겨울은 그 정도가 지나쳤다. 잎눈까지 잔뜩 열어놓아 나무의 안위를 위협할 지경이었다.
한강이 얼었다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신기해하는 아이들은 성에가 무엇인지 모른다. 전통자수 물결 같이 퍼져나가는 성에의 아름다움도 알지 못하겠지. 1미터도 넘었던 고드름의 효용성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겨울 추억을 남겨줄 수 있을까. 임금님의 여름 미각을 위해 겨울철 꽁꽁 언 한 강물을 잘라 보관했던 동빙고와 서빙고 유래를 허투루 듣는 아이들, 그들은 가을걷이 끝난 밭에 내린 하얀 서리도 당연히 모른다. 골목길 처마 아래 길게 내리던 고드름으로 칼싸움놀이 했던 추억은 아파트에 삶을 묻는 요즘 아이들이게 전래되지 못할 것이다. 골목도 없지만 어울릴 친구들도 동네에 없지 않은가. 친구를 만나려면 학원에 가야 한다. 누가 아이들의 겨울 추억을 빼앗아갔을까. 눈 쌓인 날 아침, 제설 작업이 안 돼 엉금엉금 아파트단지를 기어나가는 자동차를 피하지 않고 눈 뭉치는 아이들에게 경음기 울리며 소리 지르는 어른들을 아버지로 둔 도시의 아이들은 외발썰매 지치며 놀아본 기억이 없다.
실내 스포츠센터에 돈 내고 들어가 스케이트 빌러 몇 시간 타는 게 전부다. 중산층이 몰려 사는 아파트단지에 실내 스케이트장이 몇 군데 안 되기 때문이 아니다. 땅값이 비싸 넓은 노천 얼음판이 없기도 하지만 서리 내리지 않는 회색도시의 열섬화현상은 겨울을 겨울답지 않게 만드는 까닭이다.
한 십년 전 봄인가, 경상북도 어디에서 두꺼비에 가슴이 졸린 황소개구리가 죽은 일이 발생했다. 당시 언론들은 ‘황소개구리의 천적이 두꺼비’라며, 민족주의 감정까지 실은 희망을 보도했지만, 그 에피소드는 사실 기상이변 때문이었다. 초여름에 번식하는 황소개구리가 뜨거운 초봄 저수지에 나왔다가 제 암컷인 줄 알고 뒤에서 끌어안은 두꺼비의 피부 독에 죽고 만 것이다. 자연스러웠던 지구의 대기가 공전과 자전에 관계없이 뜨거워지자 나타난 혼란이었다. 한바탕 소나기로 한여름 뙤약볕을 식혀주던 뭉게구름이 사라지고, 양자강에서 발원한 물풍선이 장마철 지난 한반도에서 터지는 국지성 호우의 원인은 여름 철새들이 텃새로 남고 감나무 북방한계선이 올라가는 원인과 같다. 기술로 계절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은 혼란스런 계절의 흐름을 기상이변으로 간단히 설명한다. 천재지변이므로 멍든 피해자들은 예외라고 보험업자들은 영악스럽게 배짱 튀긴다. 배수장에서 온 수돗물을 정수기로 거르며 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은 여름을 에어컨으로 겨울을 보일러로 평준화했다. 겨울이 여름답고 여름이 겨울답자 전에 없던 지하집모기는 겨울철도 마다하지 않는데, 고성능 살충제로 개비하는 사람들은 기술에 제 몸을 맡긴다. 자연은 혼란스러워진 계절을 바로잡으려 몸살을 앓건만, 자연의 몸살을 천재지변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자신의 면역력을 잃어가고 있다.
‘간장독과 아이들은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했건만, 수정 고드름대신 아이스크림을 녹여먹는 아이들은 계절의 참맛을 모른다. 하우스 딸기와 수입 냉동식품으로 배를 채우는 아이들은 겨울다운 겨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양말도 신지 않고 컴퓨터 앞에서 꼼짝 않던 아이들은 두꺼운 외투와 목도리로 온몸을 칭칭 감고 자동차까지 걷지만 감기를 노상 달고 산다. 겨울철 감기만이 아니다. 소아과는 환절기마다 재미를 본다. 간장독이 사라진 요즘, 아이들은 겨울철에 안 얼지, 맨 살을 노출시키지 않아 알 수 없다.
이번 겨울이 춥지 않을 것이라는 기상대의 예보가 맞을지 알 수 없다. 최첨단 슈퍼컴퓨터를 동원한다해도 장기예보는 정확할 수 없다고 한다.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초겨울 산록을 덮던 개나리, 진달래, 백목련 꽃송이들은 수정해줄 꿀벌을 만나지 못해 씨앗을 맺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이번 추위에 얼어붙었을지 모른다. 우리말도 서툰 아이에게 영어책을 몰아주어야 똑똑한 엄마라고 부추기는 광고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가 신문 읽는 기적을 눈여겨보라고 속삭인다. “예담이는 열두 살에 천만 원을 모았다”고 입에 거품을 무는 풍토에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건강할 수 있을까.
혼란스런 계절의 흐름은 전통 놀이와 함께 아이들의 건강도 앗아갔다. 겨울은 겨울답고 여름은 여름다워야 한다. 이번 설은 그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참에, 이번 혹한으로 얼어죽었을 초겨울의 꽃눈 잎눈에 애도를 표한다. 아이들에서 반성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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