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내 지역이므로 쓰레기소각장이나 핵폐기장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한다면 나는 지역이기주의자”가 되므로 서둘러 반대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그래야 이성을 무기로 하는 지식인은 지역이기주의자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소각장은 다이옥신이 많이 배출된다는 점, 우리 지역은 분지지형인데 분지지형에 소각장이 건설돼 다이옥신이 정체되면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 그러므로 우리 지역에 소각장을 건설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해야 마음이 놓인다. 핵폐기장도 마찬가지다. 내 지역은 활성단층이 있으므로 들어설 수 없는 과학적 타당성을 준비해두어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
논리는 대항 논리를 부른다. 분지지형이 아닌 곳이면 쓰레기소각장이 괜찮은가. 다이옥신을 기준치 이하로 제거한다면 아무데나 건설해도 무방하다는 논리인가. 이러저러한 논리적 이유로 내 지역이 안 된다면 그 논리에 적용되지 않는 남의 지역은 타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위기에 몰리는 다른 지역의 지식인도 지역이기주의자로 낙인찍히기 싫다면 반대하기에 앞서 새로운 논리를 고민해야 한다. “소각 위주의 쓰레기 정책은 재활용이나 감량화 정책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우선할 수 없다”고. 그렇다면, 재활용과 감량화 정책까지 거친 이후 발생하는 쓰레기는 어떻게 하나.
지식인들과 달리 논리에 약한 주민들은 혐오시설을 무조건 반대한다. 논리와 관계없이 혐오시설은 누구에게나 어느 곳에서나 언제나 혐오스럽기 때문이다. 다이옥신을 충분히 낮춘 쓰레기소각장을 분지가 아닌 지역에 건설하려고 해도 그 지역의 주민들이 반겨줄 리 없다. 방사능을 자연 상태보다 낮춘다고 아무리 광고해도, 활성단층이 없어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백번 천번 강조해도 주민들은 핵폐기장을 싫어한다. 온갖 주민편의시설과 과다한 보상으로 사탕발림해도, 지식인들이 열거하는 거부해야 할 논리 유무와 관계없이 혐오시설을 싫어하는 것은 주민으로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역이기주의자!’라는 듣기 부담스러운 호칭은 누가 남발하는가. 혐오시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역의 주민들이 외치는가. 아니다. 혐오시설을 건설하며 반사이익을 챙길 어떤 세력이 ‘지역이기주의자’라는 나팔을 분다. 그들은 누구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지역이기주의가 없었다면 쓰레기 감량화나 재활용 정책이 수면 위에 올라왔을 리 없는데, 핵폐기장과 핵발전소 반대운동이 없었다면 재생 가능한 에너지 발굴에 요즘처럼 관심이 높아질 리 없는데, 혐오시설에 관한 지역이기주의는 진정 이기적인가 다시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지역이기주의자라는 의도적인 손가락질이 두려워 개발한 논리의 우산에 숨어들고 말았다면 대안이 모색될 수 있었을까.
학급대항 축구시합에 반별로 응원하던 학생들이 학교대항 축구시합에 하나로 뭉치듯, 지역에 대한 애정의 발로인 지역이기주의는 지역은 물론 전체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발한다. 그런 이치로, 모든 지역의 주민들이 혐오하므로 핵폐기장을 건설할 수 없다면 핵폐기물을 쏟아내는 핵발전소는 당연히 중지해야 한다. 소각장도 마찬가지다. 긍정적인 효과는 무엇일까. 우리보다 바람의 양이나 햇볕의 강도가 세지 않은 독일은 향후 50년 내에 모든 에너지의 50퍼센트를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 바꾸려고 한다. 핵폐기장과 핵발전소를 내 지역에 건설하는 것을 반대하는 독일 시민들의 운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면도에 이은 울진과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에서 주민들은 내 지역은 절대 안 된다고 외쳤다. 지식인들이 마련한 많은 논리에 관계없이 주민들의 강력한 운동은 혐오시설의 건설을 거푸 막아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부안 주민도 위도 핵폐기장을 반대한다. 위도 핵폐기장이 실패하면 정부는 다른 지역을 모색할 것이고, 다른 지역의 주민들도 거세게 반대할 것이다. 모든 지역에서 다 반대한다면 결국 핵발전소는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정부는 할 수 없이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을 발굴해야 할 것이다.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요체는 거기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 부안의 핵폐기장 반대운동은 색다르다. 지역이기주의에서 한 단계 승화된 모습을 보인다. “내 지역뿐 아니라 남의 지역도 안 된다”는 이른바 ‘니아미(not in anyone’s back yard) 정신’으로 가다듬은 주민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핵 없는 세상”과 더불어 “재생 가능한 에너지 대안”을 외치는 게 아닌가. 온갖 회유와 협잡에도 흩으려들지 않는 주민들은 공권력의 폭력에 맨몸으로 맞서며 이제까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었던 이타주의적 행동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 반핵포럼을 위해 방문한 프랑스 독일 일본 대만의 주민들은 부안 주민들의 행동에 크게 감동하고 고무되는 모습이 역력했다.
위도 핵폐기장을 반대하는 부안 주민들의 지역이기주의를 넘는 행동은 분명 이 땅의 핵정책이 더욱 빠르게 포기되도록 유도할 것이다. 투자가 미미한 재생 가능한 에너지 연구와 보급을 한층 촉진할 것이 틀림없다. 부안 주민들의 감동적인 반핵운동은 타 지역의 다른 운동에도 전파되어 소각장이나 골프장과 갯벌매립 반대운동들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이와 같은 부안의 이타주의적 행동은 이전의 많은 지역이기주의가 긍정적으로 작동했기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는 사실이다.
혐오시설의 건설을 반대하는 지역이기주의는 논리로 극복할 성격의 부당한 용어일 수 없다. 지역, 나아가 전체를 구하는 에너지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은가. 탐욕스런 세력들의 지역이기주의자라는 소리에 주눅들지 말고 주민들은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전체를 염두에 두는 니아비 정신, 즉 이타주의적 발상으로 내 땅, 누구의 땅도 안 된다고 대항해야 한다. 지역이기주의는 이타주의의 전주곡이 아닌가.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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