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에도 어느새 잔디들이 누렇게 겨울채비를 하고 있다. 서울 곳곳에서 은행알을 줍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내 한해의 농사가 저 은행알 만큼이나 토실하게 익었는지 반성을 하게 한다.
누구나 티박스에 서면 멋진 샷과 흔쾌한 장타로 그린 위를 나르는 포물선의 공을 그려본다. 그것은 언더파를 치고 싱글을 하고 조금전의 자신의 타수보다 줄여보려는 목표가 정확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 목표를 향해 그린의 생김생김을 관찰하고, 캐디에게 번거롭게 물어보며 그린까지의 거리와 필드의 지형적 상황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이같은 관찰력과 집요할 정도의 탐구는 프로골프일수록 더욱 치밀하고 정확하다. 물론 100대를 오가는 나같은 초보 골퍼에게는 그저 평야처럼 펼쳐진 넓은 잔디위에 떨구기 위해 공을 치고 그깟 지형적 특성 따위는 안중에 없다.
그러면서 어느날 갑자기 100대를 깨고 났을 때 다시금 그날 경기에 임한 자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언가 종전과는 다른 면을 깨닫게 된다. 소나무등 장애물이 어디에 있고, 지형의 높고 낮음을 인지하고 바람이 어떻게 불며, 심리적으로는 어제 술을 얼마나 마셨고, 오늘 아침의 마음은 어떤 상태인지를 스스로 재어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도전적 의식이 남다른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같은 자아적 관찰을 실험하고 옥제우기 위해 종종 내기 골프를 한다. 그것은 돈을 탐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흩어지려는 자아를 돈과 연계하여 잡아두고 싶기 때문에 내기를 걸곤 한다. 그래야 실력이 향상된다는 논리다.
환경부는 중앙정부이다. 비록 국가 경쟁력에 있어서 규모나 현실적 파급은 미미하지만, 모든 부처의 조화 속에 국가 경쟁력은 높아지고 삶의 질이 좋아지며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는 척도로 군림하고 있다.
그런 환경부의 국장급이라면 지조가 있고 자신의 철학이 있어야 하며,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있어야 한다. 주사시절, 올챙이 사무관시절이야 그린에 선 것만으로도 짜릿한 흥분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국장정도이면 바람을 이용한 티샷을 날리고 그린의 지형적 특성에 맞는 퍼팅으로 버디를 잡아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환경부는 지조와 소신과 철학이 있는 간부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100이든 110이든 횡설수설, 종횡무진, OB를 내든 말든 벙커에 들어가면 들어간데로 연못에 낙하유수가 되든 말든 그저 자연을 즐기는 듯한(하긴 정신없어 당혹스러움에 제대로 자연을 관찰하지도 못하면서) 그런 흐름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아무리 환경부가 NGO의 바람결에 익어간 부처라지만 20년 구력을 넘긴 지금에서도 NGO바람 앞에 맥을 못 추고 먼저 조루를 내고 만다.
햇빛이 강하다고 그늘로 숨고, 바람이 거세다고 조루를 내는 그런 국장들 뒤에 남아있는 올챙이 골퍼들은 설사 장타의 구질을 지녔어도 오비나 내고 마는 형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전임 대왕대비마마로 처음 부처에 입문한 장관이 6개월 내에 환경부를 압도하고 전권을 휘두를 수 있었던 점도 사실은 그의 냉혹하고도 매운 지휘자라기보다는 남보다 먼저 굽히고 소신과 철학이 불명확한 대대장들만이 있었기에 점령하기가 용이했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무혈점령이다.
젊은 사무관들은 이 같은 사실에 비애를 느끼며 제각기 목소리를 내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비명과 같은 외침으로 묻혀지고 만다.
환경부, 지금 당신은 경제적 위기 속에 환경이라는 지킴이의 역할이라는 명분 속에 고뇌하고 있다.
버디는 쉽게 되지 않는다. 오늘은 보기플레이, 한 1년 후면 파를, 그리고 얼마 후에는 버디를 낚고, 세계를 향한 이글도 해보려는 마음의 설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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