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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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남자는 관에 들어갈 때까지, 여자는 관에 들어가서도!
남자는 관에 들어갈 때까지, 여자는 관에 들어가서도!
남자는 죽을 때까지 성생활을 꿈꾸고, 여자는 죽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품는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여자와 남자는 사랑과 성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남자가 보는 것에 비중이 큰 데 비해 여자는 사색적이다. 남자가 포르노로 대표 된다면 여자는 로맨스 소설로 설명할 수 있다.
남자는 여성을 볼 때 시각적이다. 외모에서 우선적으로 성적 매력 여부를 판단한다. 남자가 예쁜 여자를 보면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다. 여자는 목소리에 약하다. 잘 생긴 남자 못지않게 아나운서에게 호감을 느끼는 이유다. 여기에 이야기 능력까지 더해지면 호감은 급상승한다.
남자가 성을 지속적으로 탐닉하는 본능이 있는 데 비해 여성은 사랑과 결부된 성에 관심이 많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남자 뇌는 6초마다 섹스를 생각한다는 실험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남자와 여자에게 갈등이 있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사랑의 심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심리학자 그렌 윌슨은 “여성은 사랑하는 남성과 더 많은 사랑을 하고 싶어 한다. 이에 비해 남성은 더 많은 여성과 사랑을 하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남과 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은 모두에게 지고지순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름다움이고 평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낱 욕망의 분출로 폄하될 수도 있다. 정보의 열람성과 익명성의 거대한 바다인 인터넷의 확산은 성의 신비로움도 진열장의 상품으로 타락시키기도 한다. 숭고한 성이 그저 그렇게 값싼 육체의 탐닉이 된 장면을 보자.
우리 과(科)에서 남학생들한테 나는 ‘스쿨버스’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1학년 한 학기를 마치고 나서부터다. ‘스쿨버스’란 누구나 공짜로 올라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별명이 처음엔 우리 학과 안에서만 나돌더니 이젠 내가 속해 있는 단과대학 전체로 퍼져나갈 정도가 되었다. 지난번에 문득 전화로 불러내어 벼락치기 섹스를 한 윤우 형 역시 나를 쉽게 스쳐 간 여러 남자들 중의 하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가 그런 별명으로 불려도 우리 과 남학생들이나 여학생들이 나에게 별로 눈총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들 그것도 하나의 개성이나 취향이려니 하고 별 간섭을 해오지 않는다.
연세대 마광수 교수가 쓴 소설 ‘나만 좋으면’의 일부다. 에로티시즘 작가인 그는 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를 통해 성(性)을 과감하게 표현했다. 일부 여대생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상상력으로 표현한 글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성에 대한 절제와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싶은 작가의 바람이 담겨있다.
사색하는 문인이나 철학자들은 성에 대해서도 좀 더 고민한 듯하다. 독일 문학의 최고봉인 괴테는 상류층이 아닌 평범한 여성과만 성생활을 할 수 있었고, 반대로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는 귀족 집안의 유부녀에게 호감을 느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아내에게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또 많은 문인들은 자본주의 시대의 상품처럼 돈으로 거래되는 성, 일부 부유층이 독차지 하는 성의 모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성의 큰 흐름은 숭고하다. 귀농과 채식 바람을 일으킨 미국의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의 사랑도 느낌표로 다가온다. 헬렌은 26세에 세계적 지성인 스코트 니어링과 만난다. 21년의 나이차를 극복한 두 사람은 존중하는 연인이 된다. 스코트는 100세 생일을 앞두고 음식을 끊는다. 스스로 위엄 있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다. 헬렌은 스코트와의 만남과 사랑을 자전적 에세이 형식으로 출간했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로 번역된 책에서 그들의 성(性)을 넘어선 러브스토리를 읽을 수 있다.
사랑하는 스코트. 우리는 50년 동안 사랑과 동지애 속에서 같이 살아왔습니다. 결혼 생활은 결코 그 사랑의 본질이 아닌 듯합니다. 우리는 관심과 목표와 행동이 일치하는 두 사람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면서 또한 함께 해온 많은 것들을 좋아했습니다. 지적이고 훈련된 당신의 소양은 나보다 훨씬 위였고, 기술은 더 뛰어났으며, 경험도 더 넓었습니다. 당신이 나의 부족한 능력을 뛰어넘도록 이끌어준 이해와 협력의 바탕위에서 같이 일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신비로운 작용으로 평등하게 되었고, 하나의 삶을 살았습니다. 감사드려요, 그리고 영원히 당신에게 최상의 찬사를 보냅니다.
위 마광수 소설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의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다. 주변의 유혹, 쾌락의 성, 인터넷의 익명성 등으로 인해 신비함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실제로 요즘은 인터넷 바다가 아니어도 에로티시즘에 적나라하게 노출돼 있다. 아침 눈 뜨면서, 밤 눈 감을 때까지 직간접의 야한 장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영화, 문학, 사진, 음악의 상당수는 성을 주제로 하고, TV속의 광고도 은연중에 에로티시즘을 깔고 있다.
그러나 헬렌과 스코트의 사랑을 볼 때 아름다운 사랑, 숭고한 이성은 환경이 아닌 마음가짐임을 알 수 있다. 남녀의 사랑 본능은 분명 차이가 있다. 남자는 여자의 은밀한 부분까지 다 알면 신비감이 소유욕으로 옮겨간다. 여성은 남자의 은밀한 부위를 알게 되면 사랑이 더 깊어진다. 뇌의 구조적 차이는 필연코 사랑에 갈등을 불러오게 된다. 다른 연인에게 눈을 팔고, 헤어짐이 그 이유다.
하지만 사랑은 차이를 극복하며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는 이성적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지성적인 행동이다. 그래서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고,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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