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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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54> 사랑의 저주와 일부일처제 인간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은 빼앗고 빼앗기는 관계다. 이 같은 설정을 하면 사랑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기(氣)가 세야 할 수 있다. 사람이 유하고 물러터지면 사랑에서도 물러나게 될 수 있다. 사람은 이해와 배려를 꿈꾼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가 되면 쟁취의 주인공이 된다.
사랑의 요소는 이해 배려 투쟁 등이 복합돼 있다. 한국의 사극영화나 TV 사극 드라마의 불패 법칙이 있다. 인현왕후와 희빈 장씨 그리고 숙빈 최씨의 사랑과 야망을 작품화하는 것이다. 광복 이후 숙종과 여인을 다룬 작품은 1백 여 편에 이른다. 모두 흥행 성공이나 평년작을 이뤘다. 다른 주제들은 실패와 성공의 부침이 심한 데 비해 숙종과 여인들을 주제로 하면 대박이나 무난한 결과를 얻은 것이다.
이는 권력다툼, 세 여인과 한 남자, 귀족과 평민과 천민 출신의 여인들, 보수집단과 혁신집단, 서인과 남인 등 갈등과 통합을 증폭시키는 다양한 요소 덕분이다.
또 흥미를 돋우는 여인의 주술도 한 몫 한다. 친정으로 내쳐졌던 인현왕후는 와신상담 끝에 중전으로 복귀한다. 후궁에서 왕비가 되었던 희빈장씨는 다시 후궁으로 강등된다. 정권은 인현왕후와 같은 세력인 서인이 되찾고, 희빈장씨를 후원한 남인은 실각한다.
그런데 궁궐로 돌아온 인현왕후가 5년 후 시름시름 앓다가 숨진다. 곧바로 남인은 희빈장씨의 중전 복귀 가능성을 타진한다. 위기를 느낀 서인은 희빈장씨는 공격한다. 인현왕후의 오빠인 민진후는 왕비가 생전에 "내 병세가 지극히 이상하다. 사람들이 모두 '반드시 빌미가 있다'고 한다"고 했음을 숙종에게 아뢴다. '빌미'는 희빈 장씨의 저주로 인해 병이 생긴 것을 말한다.
때맞춰 숙빈최씨는 숙종에게 속삭인다. “희빈 장씨가 취선당 서쪽에 신당(神堂)을 만들고 매일 같이 인현왕후를 저주했습니다.” 야사에 의하면 숙종의 꿈에 온 몸에 화살을 맞은 인현왕후가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했고, 숙종은 취선당 주변을 수색해 저주 인형 등을 찾아낸다. 짚으로 만든 인현왕후 인형에는 수많은 바늘을 꽃혀 있었다. 이로 인해 인형왕후는 온 몸에 종기가 나고 심한 열을 호소하며 고통 속에 죽은 것으로 해석됐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야사를 바탕으로 해 섬뜩한 저주물이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저주물은 서인과 숙빈최씨 측의 조작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희빈장씨는 취선당에서의 굿판은 두창과 그 후유증에 시달린 세자의 건강회복을 위한 것임을 주장한다. 하지만 매에 못이긴 궁녀들은 숙종과 숙빈최씨 측이 듣고 싶어하는 답을 했다. 숙종은 희빈장씨가 몰래 신당을 차리고 인현왕후를 저주해 죽게 했다는 ‘왕비 저주 사건’을 발표하고, 희빈장씨의 목숨을 거둔다.
희빈장씨와 인현왕후의 님을 향한 몸부림은 비극적 종말을 고한다. 진실은 영원히 역사 속에 묻혔다. 다만 남은 것은 ‘한 남자와 여러 여자의 삼각관계는 위험할 수 있다’는 고식적인 이야기다. 일대일 사랑이 아닌 일대 다의 사랑은 위험천만하다.
연인의 저주사건은 세종시대에도 있었다. 세종 6년 9월21일 형조에서 보고한 사건 내막이다.
전직 공무원 고순의의 아내인 장이(長伊)가 간통했다. 남자는 작은아버지 전처(前妻)의 아들인 김진의다. 피가 섞이지 않은 사촌이 간통한 것이다. 둘은 공모하여 남편인 고순의를 죽이기로 했다. 장이는 고순의의 머리카락을 자른 뒤 무당과 집 하인에게 줘 인형을 만들게 했다. 인형의 사지(四肢)에 유자 가시를 가득히 꽂아 신당(神堂) 놓았다. 또 ‘고순의는 3일 내에 급사(急死)하라’는 주술문 10장을 암자 등에 놓았다. 우연하게도 고순의는 며칠 만에 죽었다.
남이 잘 못되도록 비는 저주인형과 주술문은 조선시대에 왕실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은밀하게 진행됐다. 방법은 머리카락이나 짚으로 인형을 만들어 바늘이나 가시로 무수히 찌르는 것이다. 때로는 저주 인형에 인적사항도 자세히 적었다. 그렇다고 저주문화는 우리나라의 전유물은 아니다. 인간이 사는 모든 곳에 존재해왔다. 대부분의 공통점은 인형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저주는 힘이 약한 사람이, 또는 드러내 놓고 불만을 표출할 수 없는 사람이 은밀하게 행한다. 시기와 질투의 다른 표현이다. 삼각관계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결론이다. 한 남자는 한 여자만, 한 여성은 한 남성에게만 눈 돌리자. 속마음이 다른 이성에게 향할지라도, 겉행동은 한 사람만 바라보자. 그것이 일부일처 시민의 숙명이다.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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