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지난 10월 27일부터 11월 8일까지 서울 세종호텔 세종갤러리에서 정일영 화가 초대전이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정 화가의 양평 서후리 풍경을 비롯해 울산, 독도 등의 풍경 30여점을 전시한 것으로 그만의 시선으로 새롭게 생명력을 얻은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풍경의 구체적인 형태나 형상보다는 굵은 힘찬 붓질과 원색의 색감, 강렬함, 짧은 터치 등이 눈길을 끈다. 이번 호에는 정일영 화가의 작품세계와 주요 작품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생생한 색감으로 구현되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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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후리(양평) 2020년 |
정일영 화가의 작품은 주로 풍경을 많이 다룬다. 그러나 그 풍경은 우리가 이미 아는 구체적인 풍경이 아닌, 원색의 화려한 색감으로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움직임과 흔들림은 선을 긋지 않고 점을 찍은 듯 보인다. 이는 굵은 붓질의 반복과 언뜻언뜻 보이는 흰색, 붉은색, 파란색 등에서 더욱 강렬하게 가시화된다.
선이 없이 붓질로 그리는 것은 대상의 표면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화가의 의도라 할 수 있다.
정일영 화가는 대상의 생동감을 표현하기 위해 실제 대상보다 채도를 한 단계 올려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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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후리(양평) 2019년 |
정 화가는 “채도를 올리는 작업은 나에게 아주 중요하다. 대상의 생동감과 생명력은 바로 채도에 있기 때문이다. 채도가 올라간 작품은 전체적으로 밝아지며 화면 속 붓질의 흔적들은 생명을 주장하며 일렁인다”고 말했다.
생각하며 그리는 그림
31살 늦깎이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한 그는 모교 대학원에서부터 비구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는 ‘무엇을 그려야 할까’하는 문제로 고민했다. 인물은 그저 소재에 그칠 뿐이었다. 그는 주변 풍경과 일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풍경 관찰에 들어갔지만 그 풍경을 그대로 그릴 수는 없었다. 그는 최초 그린 것을 지워내고 무(無)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의 의식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무의식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무의식화되어 있지만 알고 있는 이미지는 배제하고, 깨닫고 의식하지 못했던 이미지들을 끄집어내면서 그림 세계는 생명력을 얻었고 더욱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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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전경 |
많은 사람들이 그의 회화 속의 강렬한 붓질을 보고 인상파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시간을 기록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세계의 객관적인 재현을 도모’했다는 인상파와는 오히려 정반대의 접근을 취한다.
빛과 같은 변화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형태를 끊임없이 거부하면서 그 대상의 내면으로 들어가고자 애쓰기 때문에 의심에 근거한 객관적인 재현을 도모하는 인상파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작가에게 있어 그리려는 대상과 풍경을 한참씩 들여다보는 행위
는 ‘보다’라기보다 ‘생각하다’라는 동사와 더 밀접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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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
작품을 그릴 때마다 직접 현장에 가서 풍경을 관찰한다는 정 화가는 보통 1주일 내지 2주일간 체류하면서 나름대로 사유에 들어간다.
“나에게 작품 세계가 되는 풍경은 객체요, 나는 생각하는 주체가 되기 때문에 시간은 금방 지나갈 수밖에 없다. 간혹 악천후가 지속될 때면 몸이 고될 때도 있지만 현장을 직접 보는 일은 간과할 수 없으며 고통스런 존재를 응시하는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작품 중 양평 작업실 풍경을 묘사한 <풍경의 깊이>를 비롯해 <독도>, <주전해안> 등은 이렇듯 지난한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림에 접목한 생태학적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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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전해안(울산) 2018년 |
정일영 화가는 작품에 생태신학적 관심을 녹이길 원한다. 이는 ‘종교적 풍경화’의 시도라 할 수도 있다. 영적인 느낌의 과정에 이르는 길. 이는 움직인다는 느낌으로 구현된다. 그의 작품은 구체적인 형태나 형상보다 무수한 흔들림을 보여준다. 움직임과 흔들림은 선을 긋지 않고, 얼핏 점을 찍는 등 굵은 붓질의 반복으로 보여주고 있다. 선을 그어 형태가 결정되면 대상 속의 살아있음, 즉 움직임의 변화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형적인 고려보다 화면 속에 ‘살아있음’을 포착하고 싶은 심리적인 동기가 그림에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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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전해안(울산) 2020년 |
또한 분자 등 현대물리학의 이론에 매료된 적이 있다는 정 화가는 그래서인지 몇 년간 전시 제목으로 “생각하는 숲”을 택하기도 했다. “풍경 속”을 알고 싶어 나무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자연의 대상을 구성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 혹은 생명력을 찾기 위해 애쓰며 더듬어갔던 일관된 작업은 비구상의 형태로 우리 눈에 보이지만 “불안과 긴장, 흥분, 갈등으로 보여지는 형상이 아니라 현상”으로서 뒤섞인 공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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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을 설명하는 정일영 화가 |
예컨대 노란색이 더 들어감으로써 그림은 전체적으로 밝아지며, 화면 속 붓질의 흔적들은 각각 자신의 생명력을 주장한다. 한편 붓의 흔적은 서로 밖으로 밀어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 결과 화면은 일렁이듯 움직인다. 주목할 점은 화면 속에 그려진 대상이 산이건, 집이건 돌이건 붓질 하나 하나는 모두 균등하고 동일한 활력을 지닌다는 점이다.
그의 풍경을 보노라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색감이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무엇이 과연 있는지, 그 스펙트럼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화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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