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의 자녀출산과 로또 복권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11>
온라인팀 | eco@ecomedia.co.kr | 입력 2015-12-14 11: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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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11> 신라인의 자녀출산과 로또 복권

 
의학의 발달은 다둥이를 많이 낳게 한다. 전체 출산율이 갈수록 낮아지는 우리나라에서 다둥이 출산율이 해마다 높아지는 이유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3년에 1만 4,372명의 쌍둥이가 태어났다. 2003년의 9,808명에 비해 46% 증가한 수치다. 여성의 결혼연령이 높아지고, 직장생활 스트레스 등으로 난임이 많은 탓이다.

 

이에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아기 시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난임 치료에서는 임신확률을 높이기 위해 한 번에 여러 개의 난자가 배란되도록 유도하고, 2개 이상의 수정란을 이식한다. 자연히 다둥이 가능성이 높아진다.  


 최근 의료계에서는 기존의 '불임' 용어를 '난임'으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통상 1년 이상 피임 없이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지속했음에도 임신이 이뤄지지 않을 때 불임이라고 했다. 임신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겪는 경우이므로 난임이 올바른 표현이다.

 

 한의학적으로 볼 때 과거에는 영양불량으로 인해 자궁의 성숙이 떨어지거나 혈액공급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허약(虛弱)성 원인이 많았다. 당연히 다산도 어려웠다. 현대에는 오히려 영양과잉이나 과도한 신경피로로 자궁이 과민해져 임신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둥이에 대해 많은 주부는 긍정적이다. 터울을 두고 아이는 낳는 것보다 쌍둥이 육아가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다. 또 2013년 쌍둥이 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해 출산휴가 연장 등 여러 혜택도 받는다. 각 지자체도 셋째 이상 자녀 출산 시 장려금을 지급한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데 최저 10만원에서 최고 720만원이다.


다둥이는 의학의 개가다. 의료수준이 낮던 시대에 고민만 하던 난임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둥이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다둥이가 당연히 적었다. 출산을 자연 영역에만 의지했기 때문이다.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낮은 삼둥이 이상이 태어나면 나라에서는 곡식을 내려 산모를 격려했다. 사람이 국력인 농경사회에서는 다둥이의 출생을 행운으로 보았다.


삼둥이 이상의 다둥이 출산장려금은 처음에는 로또복권과 같은 일확천금이었으나 나중에는 1년 연봉 수준으로 떨어졌다.


우리나라 역대 최고 다둥이는 다섯 쌍둥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별휴왕 10년(193년)에 경주에 살던 여인이 4남 1녀를 낳았다고 적었다. 기록상 네쌍둥이는 8명이 출산했다. 통일신라 때 3회, 조선시대 5회다. 4명 모두 남자인 경우는 네 번이고, 3남1녀가 2차례, 2남2녀가 2회였다. 조선에서의 세쌍둥이는 모두 151회가 기록됐다.


문무왕 9년(670년) 1월 7일 한지부(漢岐部) 일산급천(一山級千)의 여종이 네 쌍둥이, 3남1녀를 낳았다. 통일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병합으로 국력이 크게 신장돼 있었다. 큰 부를 바탕으로 사천왕사 건립 등 각종 토목사업도 일으킨 문무왕은 크게 기뻐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왕은 통 크게 곡식 200석을 내려줬다. 200석을 쌀로 환산하면 대략 4,000만원 선이다. 쌀 20kg을 3만원으로 계산하면 200석은 4200만원이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여건으로 보면 인생을 바꿀 큰 가치였다. 조선 세종 때 종9품이 한 해에 받는 쌀과 콩이 10석에 불과했다. 즉 200석은 공무원 20년 연봉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연봉 5천만 원의 직장인을 계산하면 10억 원의 포상금이다. 다름 아닌 로또복권이다.


조선에서도 삼둥이 이상의 다둥이 가족 경제적 지원은 쌀 10석으로 보인다. 명종 1년(1546년) 2월 8일 두 여인의 다둥이 순산 보고가 있었다. 경상도 양산의 명월이가 아들 넷을 낳았고, 강원도 원주의 사월이는 아들 셋을 얻었다. 그 무렵에는 흉년이 계속돼 나라살림이 어렵던 처지였다. 승정원에서 건의했다. “ 지금까지 다둥이 출산녀에게 쌀과 콩 10석을 지급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전례에 따라야 하지만 흉년으로 비축곡물이 거의 떨어졌으니 감량하여 지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임금은 쌀 몇 석으로 국고가 비겠느냐며 10석 하사를  지시한다.


이에 앞서 세종실록에서도 비슷한 글이 나온다. 세종이 13년(1431년) 7월5일 승지와 한 대화다. 경상도 초계군에 사는 사노비 약비가 3형제 쌍둥이를 낳았다. 그런데 두 아이가 바로 죽고, 한 아이만 생존했다. 이에 승정원에서는 1명의 출산으로 보았다. 쌀 열섬을 주던 삼둥이의 전례를 적용하지 않았다. 이에 세종은 삼둥이는 출산기준이지, 생존으로 따지는 게 아님을 지적했다. 그러나 승지 안승선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예조에서는 5석 하사 안을 건의했다. 이로 보아 당시 삼둥이 지원은 쌀 10석이 정석임을 알 수 있다.


다둥이 양육이 어려울 때도 지원한 사례가 있다. 인조는 19년(1641년) 6월 10일 세쌍둥이를 힘겹게 키우는 경기도 풍덕의 백성 임광에게 경제적 지원으로 하도록 했다. 그렇다고 모든 다둥이 엄마가 지원 받은 것은 아니다. 실록에는 쌀 7석을 내린 사례도 있고, 하사품 내용이 실리지 않은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 다둥이 출산은 대부분 양민과 천민이다. 양반은 실록에 소개되지 않았다. 양반이 조선전기에 10~20%, 조선후기에도 40% 이하라는 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살림이 곤궁해 경제적 지원이 절실한 계층에서 적극적으로 신고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조선시대는 일확천금을 꿈꿀 세상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다둥이는 큰 효자가 아니었을까. 신라시대에는 당연 로또복권이었을 게다.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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