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와 70명 여성의 대화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3>
온라인팀 | eco@ecomedia.co.kr | 입력 2015-11-20 10: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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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 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3> 한 남자와 70명 여성의 대화
 

  

 

 연애를 하면 인간관계가 변화된다. 사랑하는 이가 한 명 생기고, 사랑해선 안 되는 사람이 너무 많아진다. 이것이 정착된 게 일부일처제다.

 

이 제도는 ‘나, 모두 다 사랑하리’라는 본능을 효과적으로 억눌러왔다. 어겼을 경우는 마음에 죄의식이 생긴다. 도덕의 이름으로 강제된다. 이웃에게서 손가락질 받는다. 사회질서를 와해시키는 범법자가 된다.


인간의 본능을 누르는 대신 삶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최대공약수로 인식된 일부일처제의 핵심은 정조(貞操)다. 남성 보다는 주로 여성에게 족쇄가 된 도덕이다. 이기적인 인류가 공존하는 데 그나마 이바지했다는 정조 관념이 발가벗겨지고 있다.


가정을 지켜온 단어 정조(貞操)가 방황하고 있다. 2015년 헌법재판소는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형법 제241조의 ‘간통 및 상간행위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이 사문화된 것이다.

 

성폭력 방지법도 제정되었다. 법률 사전에서 '정조' 단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법의 강제가 사라진 ‘정조’는 심리적으로도 설 곳을 잃어가는 듯하다.

정조(貞操)는 성적(性的) 관계에서의 순결(純潔)을 지키는 것이다. 결혼 전 순결과 결혼 후의 배우자 외의 사람과 성 접촉을 하지 않는 의미다. 만약 배우자 외의 다른 사람과 관계하면 간통죄로 처벌 받는다. 그런데 간통죄가 위헌 판결을 받았다. 정조는 자칫 사어(死語)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불륜을 저질러도 형사처벌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난 이에게 심리적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판 속에 ‘불륜은 무죄’라는 독버섯 의식, 신난 불륜커플 묘사 드라마 등 사회의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욕구 분출의 제어장치가 풀린 기미가 곳곳에서 확인된다. 몰래 불륜이 거리낌 없는 바람으로 이행하는 부작용도 나타난다. 또한 개인의 성을 국가가 아닌 자신이 스스로 관리하는 의식도 뚜렷해진다.

성 의식, 정조관념은 시대의 산물이다. 간통죄는 한국전쟁으로 국가재건이 필요하던 1953년에 제정됐다. 남녀 모두 처벌하는 법규다. 전통시대의 잔재가 남았던 이전의 간통죄는 유부녀만 처벌했다. 봉건적 사고가 남아있던 1953년 간통죄 제정 때는 남녀 모두 처벌, 여성만 처벌, 남성만 처벌, 간통죄 폐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진통 끝에 1표 차이로 남녀 쌍벌 처벌의 법안이 통과했다.


2년 뒤인 1955년에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판결이 나온다. ‘법은 보호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는 내용이다. 무조건 보호받아야 하던 정조에 대해 여성의 책임도 물은 것이다.

사건은 매력 넘친 한 남성에게서 발단 된다. 헌칠한 키의 훈남에 세련된 매너를 지닌 해군 헌병 대위가 있었다. 사랑하는 약혼녀가 있는 그는 행복한 사내로 보였다. 그런데 약혼녀가 떠났다. 실연당한 그는 여인을 탐하기 시작했다. 카바레, 무도장으로 출근했다. 근무지 이탈 등 군무에 소홀해졌다. 군에서 불명예 전역을 당한 그는 ‘취미’를 ‘직업’으로 바꾼다. 국일관, 낙원장 등 고급댄스홀에서 살다시피 하며 ‘프로’의 삶을 산다.

젊은 장교 행세를 한 그는 화려한 언변으로 이목을 끌었다. 특히 빼어난 춤 솜씨로 뭇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람 심리는 묘하다. 카바레에서 유혹하는 사람의 저의를 의심한다.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빠져든다. 최고에게 약한 심리 탓이다. 카바레에서 최고는 춤 잘 추는 사람이 다. 그는 금세 스타가 되었다. 국회의원 딸 등 수십 명 여성의 가슴에 사랑의 불씨를 지폈다.

군에서 첩보를 입수했고,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실제로 장교가 고급 댄스홀에서 만난 뭇 여성을 농락하는 정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고발하는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검찰은 급한대로 공무원 사칭 혐의로 체포했다. 마침, 여대생 2명이 ‘혼인빙자간음’을 당했다는 진정을 했다. 검찰은 그에게 당한 여성들의 명단을 확보했다. 기소장에는 30여 명의 이름이 올랐다. 그러나 누락된 사람도 있어 실제로는 70여명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나라의 큰 화제가 되었다. 수십 명의 여성이 당한 데 대한 관음적 관심부터 도덕윤리의 추락 등 사회적 관심사로 비화되었다. 재판정 주변에는 1만 명이 몰려들었다. 기마경찰까지 출동해 질서를 유지해야 할 정도였다. 일순간에 카사노바로 떠오른 그는 관계에 대해 “만남의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결혼을 약속한 적이 없는데 여자들이 제 발로 따라왔다. 상대 여성 중 처녀는 미용사 한 명뿐이었다”고 항변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여성의 순결 확률은 7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건의 피해 여성들은 정조관념에 목숨을 걸었다. 판사에게 “정조는 무너지지 않았다. 입술만 빼앗겼다.”, “정조를 잃지 않았다. 기소장이 잘못돼 있다” 등의 이색적인 하소연을 했다.


당시 판사는 여성의 정조에 대해 수십 년간 회자되는 정의를 내렸다. 판결의 결론부터 말하면 공무원 사칭 혐의는 유죄, 혼인빙자간음 혐의는 무죄였다. 혼인빙자간음죄는 혼인을 빙자하는 등의 위계로 음행의 상습 없는 여성을 간음한 자에 대한 처벌하는 규정이다. 이 법은 남녀평등에 반하고, 여성의 성적(性的) 자기결정권을 부인한다는 비판으로 2009년에 사라졌다. 
 
판사는 무죄를 선고하면서 명언을 남겼다.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 세상은 큰 충격을 받았다. 보호가치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한 신문은 ‘법원·검찰, 정조(貞操)관념에 견해차’를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한국판 카사노바가 날갯짓할 수 있는 사회 배경은 한국전쟁 직후의 어수선함이다. 민주주의, 향락 풍조, 순결중시, 여성의 사회진출 등이 복잡하게 얽힌 구조였다. 새로운 질서와 이념이 자리 잡히기 전의 혼돈으로 풀이할 수 있다. 기존질서와 새로운 질서의 충돌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해도 그 남자가 주장한 처녀의 확률이 70분의 1이라는 것은 향대 과장법이 아닐까.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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