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강력한 태풍이 해수의 수직 혼합을 일으키면서 불과 며칠 만에 수심별 박테리아 군집과 해양의 생지화학적 순환을 크게 변화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만국립대학교 해양연구소 연구진은 2018년 7월 동중국해 남부를 통과한 카테고리 5 슈퍼태풍 마리아 전후의 해수와 박테리아 군집을 비교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Journal of Geophysical Research: Oceans’에 게재됐다.
태풍은 바다 표면의 따뜻한 물과 깊은 곳의 차갑고 영양염이 풍부한 물을 뒤섞는다. 이 과정에서 수온과 염분, 영양염 분포가 달라지고 서로 다른 수심에 서식하던 미생물도 재배치된다. 미생물은 유기물 분해와 영양염 재생, 상위 영양단계로의 에너지 전달을 담당하기 때문에 군집 변화는 해양 먹이망과 탄소순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태풍 전후의 외해를 직접 조사하기는 쉽지 않다. 선박과 연구자의 안전 문제로 폭풍이 지나가는 시기에 맞춰 현장 자료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 연구도 태풍 발생 전후 수개월의 간격을 두고 조사하거나 연안·하구·석호에 집중된 경우가 많았다.
연구진은 2018년 7월 동중국해 남부에서 진행하던 조사 항해가 태풍 마리아의 접근으로 중단되자 이를 특별한 연구 기회로 활용했다. 태풍 마리아는 7월 10~11일 조사 해역을 통과했다. 연구진은 태풍 통과 전인 7월 6~8일과 통과 후인 7월 13~16일에 8개 정점에서 현장 조사를 수행했다. 해수면층과 엽록소 최대층, 중간층, 해저 인접층 등 3~4개 수심에서 물리·화학적 환경 자료와 박테리아플랑크톤 시료를 채취했다.
태풍 직전과 직후 일주일 안에 외해의 여러 수심에서 미생물 군집을 조사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연구진은 고속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을 이용해 태풍 전후 박테리아 군집의 다양성과 구성 변화를 비교했다.
분석 결과 태풍이 지나간 뒤 표층 수온은 뚜렷하게 낮아졌다. 반면 용존무기질소와 인산염, 규산염 등 영양염 농도와 엽록소-a 농도는 증가했다. 태풍이 차갑고 영양염이 풍부한 심층수를 표층으로 끌어올린 결과로 분석됐다.
영양염 공급이 늘면서 식물플랑크톤의 1차 생산과 박테리아 생산량도 증가했다. 박테리아가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 박테리아 호흡 역시 활발해졌다.
태풍 이후 박테리아의 총개체량과 수심별 군집 내부의 전반적인 다양성은 유의미하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박테리아 군집을 구성하는 분류군의 비율은 크게 바뀌었다. 영양염과 유기물이 풍부한 환경에서 빠르게 증식하는 고영양성 세균인 알테로모나스과(Alteromonadaceae)와 로도박터과(Rhodobacteraceae)는 증가했다. 반면 영양염이 적은 환경에 적응한 대표적인 빈영양성 세균 계통인 SAR11은 감소했다.
수심별 군집의 차이도 줄었다. 태풍 전에는 수온과 빛, 영양염 조건이 다른 각 수층에 서로 구별되는 박테리아 군집이 형성돼 있었다. 태풍이 해수를 수직으로 섞으면서 서로 멀리 떨어진 수층의 박테리아가 교환됐고, 그 결과 깊이에 따른 군집 구성이 전반적으로 비슷해졌다.
생태학적으로는 수심 간 베타다양성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베타다양성은 서로 다른 서식지나 환경에서 생물 군집이 얼마나 다르게 구성되는지를 나타낸다. 이번 연구에서는 특히 거리가 먼 수층 사이에서 군집의 균질화가 강하게 나타났다.
다만 모든 수심이 동일하게 반응한 것은 아니다. 영양염 증가는 상층부에서 더 뚜렷했고, 증가하거나 감소한 주요 박테리아 분류군도 수심에 따라 달랐다. 군집 변화를 유도한 수온·염분·영양염 등의 환경 요인 역시 수층별로 차이를 보였다.
이번 연구는 태풍이 단순히 바닷물을 물리적으로 뒤섞는 데 그치지 않고, 미생물의 생산과 호흡 및 유기물 분해를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현장 증거를 제시한다. 식물플랑크톤의 1차 생산이 늘면 광합성을 통한 이산화탄소 흡수가 증가할 수 있다. 반대로 박테리아의 유기물 분해와 호흡이 활발해지면 이산화탄소가 다시 방출될 수 있다. 따라서 태풍 이후 해양이 일정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탄소흡수원 또는 탄소배출원으로 작용하는 정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태풍 전후의 순 탄소수지를 직접 산정한 것이 아니다. 태풍이 조사 해역을 최종적으로 탄소흡수원으로 강화했는지, 배출원으로 변화시켰는지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미생물 유전자 발현을 분석하는 메타전사체학을 활용하면 태풍 이후 어떤 대사 기능이 활성화됐는지 더 구체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측 기간을 늘려 박테리아 군집이 태풍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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