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2.1~2.28) 대전 현대갤러리 기획전에 초대된 ‘박영대전’에서는 그런 실험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고암, 운보, 백생광의 만년이 그랬듯이 토속적 소재를 추상적 현대기법이라는 그릇에 토해내고 있다. 오히려 고암이나 운보보다 그 세계는 더욱 자유분방하며 광대하고 심오하기까지 하다. 앞으로 또 어떤 천착의 결과가 나타날지 기다려지며 일탈과 유희는 멈추지 않을 심산인 것 같다.
38년 전 송계와 청주에서의 첫 만남
필자와 송계의 만남은 지난 38년 전 그가 청주의 한 여고에서 미술교사로 교편을 잡고 있을 때부터다. 당시 모 일간지 문화부에 근무하고 있던 필자는 한 미협전에서 아름다운 한국화 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화선지에 그려진 목련이었다. 필자는 그를 찾아갔고 그해 겨울 신년특집에 넣을 휘호를 부탁하게 된다.
그 후 송계는 일관되게 사군자를 그리는 평범한 한국화가의 틀을 벗어나고 있었다. 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 보리를 소재로 한 사실주의에 빠져든다. 송계의 상징적 작품으로 대변되는 ‘청맥’, ‘황맥’은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이다. 1978년 맥파(麥波)로 백양회 최고상을 수상하는 계기로 교사 박영대는 고향 청주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되며 성공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된다. 그는 교사직을 박차고 나와 전업 작가로의 길을 택했다.
81년 뉴욕전시 이후 실험정신에 몰두
그러나 뉴욕에서 열린 한국화랑 초대전(1981년) 이후 송계는 과감한 실험적 도전에 몰두한다. 송계도 평소 밝히고 있지만 한 가지만을 그리는 일상은 지루하다는 것이었다. 더 넓은 세계 더 심오한 형상을 추구하고 싶은 끈질긴 실험정신이 즐겁다는 것이었다. 그 힘이 오늘날 성공한 송계의 성장 동력이다.
뉴욕 한국화랑 초대전 이후 송계는 유럽 미술여행을 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 16개국 예술의 도시 박물관과 미술관을 순례한다. 렘브란트, 고흐, 피카소 등 거장의 그림을 보면서 그의 가슴은 더 활활 타 올랐다고 한다. 그것은 ‘추상’으로 가는 여정의 임팩트 같은 것이었다. 귀국한 송계는 더욱 깊은 추상의 세계에 집착하며 천착한다. 주변에서는 말렸지만 그의 실험의지를 꺾지 못했다.
그래서 전통적 구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한국화 재료가 지닌 수묵이라는 특질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실험을 추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한국화가 지닌 장점이나 전통적 정서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수묵의 바탕위에 결합해진 오방색의 투영은 독특하고 새로운 형태의 유화적 미감으로 태어났다. 보수적이며 학연에 집착하고 있던 한국화단도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동경에서 두각 사롱드바란스전 최고상
90년대 초 송계는 서울 인사동에서 활동하면서 일본에 진출하게 된다. 일본의 유력 화가들로 구성된 동경도 그룹전에 참여하며 일본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결과 1991년 송계는 동경도 미술관에 초대된 ‘국제미술제전동경전’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한국화단보다 오히려 일본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2011년에는 사롱드바란스전의 최고상인 일본외무대신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은 수많은 세계적 화가들의 작품을 뒤로 물리게 하고 제1번으로 화집에 게재되는 영광을 부여했다. 송계는 최고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는 2011년 충북지역 예술문화 진흥과 문화발전
에 기여한 예술인에게 주어지는 33회 충북예술상 공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향 오송에 송계미술관 신축이 꿈
송계는 지금 청주시 수곡동에서 송계미술연구소를 내고 있다. 서울 인사동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온 햇수도 10년이 된다. 많은 죽마고우, 혹은 후배들과 만나 대화하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산다. 그리고 대학 교수, 학생들의 초청을 받고 그들의 멘토 역할도 한다. 어느새 고희(古稀)를 넘겨 거장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마음은 소년처럼 어리고 친구와 젊은 미술학도들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것이 젊은 모습을 유지토록하고 작품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라 할 것이다.
그는 고향 오송(五松)에서 만년을 보냈으면 한다. 송계의 아호도 바로 오송에서 따온 것. 오송은 이제 신 행정 수도 세종시의 개발과 더불어 한국의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문화, 미술계 일각에서 오송의 문화시설의 확대에 발맞춰 이 고장 출신 거장인 ‘박영대미술관’을 건립하자는 주장도 일고 있다.
“참으로 감사하고 분에 넘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고향 오송이 세종 도시의 배후로서 특히 오송 뷰티화장품엑스포를 계기로 문화예술의 도시로 발전하기를 간절히바란다”고 말문을 연 송계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더욱 실험정신에 정진, 더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인다. 거장의 반열에서도 오만하지 않고 공부하는 겸양의 자세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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