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1면 톱기사 ‘쓰레기전쟁 선포’ 특집보도
어떠한 정책형성의 필요성이나 내용은 기본적으로 그 정책집행의 시·공간적 대상이 되는 사회구조와 집단구성원의 사회의식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의미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오물청소행정시대부터 줄곧 주장되어온 쓰레기 분리수거의 제도화가 동적인 사회추진력을 얻지 못하다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강렬한 국민적 호응과 탄력을 얻게 된 연유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쓰레기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위기의식의 확산을 가져온 많은 사건 가운데서 언론계의 쓰레기 전쟁에 관한 특집보도를 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일보는 1990년 7월 29일자 1면 톱기사로 쓰레기 전쟁을 선포하였고, 전국의 매립장 실태 및 오염상황, 오물 전시장이 된 산악 및 피서지, 산업폐기물의 불법투기와 이로 인한 주민들의 참담한 고통을 6회에 걸친 연재기사로 전달하면서 분리수거를 통한 감량 및 재활용과 쓰레기 위기에 대한 국민전체의 결연한 대처 및 각성을 절실하게 호소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조선, 동아, 중앙 등 주요 중잉 일간지들이 앞을 다투어 가며 ‘쓰레기를 줄입시다’와 ‘쓰레기 재활용’캠페인을 꾸준히 펼치는 과정에서 어느덧 환경관계기사가 정치면에 자주 모습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편집체제상 변화와 덧붙여서 그간 환경오염피해의 위험성 경고와 행정의 무감각에 대한 질타에 그쳤던 논조가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감하게 쓰레기 문제의 해결에 국민 각자의 의식과 행태의 개선이 본원적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인식전환과 참여활동을 요구하여 쓰레기종량제의 시행준비에 가장 어려우면서 필수적인 기본 바탕을 갖추게 하여 주었다.
‘아나바다운동’ 등 쓰레기감량 및 재자원화 운동
이러한 언론계의 토양조성에 조응하여 대한주부클럽연합회, YWCA,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모임 등의 사회단체가 중심이 되어 전개한 재활용자원의 분리수거, 알뜰시장 운영, 1회용품 사용자제 ‘아나바다운동’(아끼고, 나누며, 바꾸어 다시쓰기), 각급 학교 및 군부대의 폐품 수집과 학생들의 교과서 및 교복 물려주기, 잔반 남기지 않기 등 나열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쓰레기 감량 및 재자원화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운동은 단순히 검소·절약하는 소비생활차원을 넘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쓰레기문제의 해결과 주민들의 생태적 책임의식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활발한 노력으로 쓰레기에 대한 사회의식의 변화가 하나의 주된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사이에, 국정운용의 틀을 짜는 마당에서도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따른 국민적 열광과 자부심이 5공 청문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허탈과 실망감에 휩싸였다.
그러자 새로운 국민정신의 결속노력의 일환으로 전개된 1990년 10월의 새질서·새생활 운동이 쓰레기문제의 해결에서 싱싱한 소재를 발견하게 되었고, 1993년 국민적 열망과 기대에 더불어 출범한 문민정부는 야성적인 사회개혁과제의 목록에 이를 흔쾌히 수용하였다.
이러한 외곽의 변화를 머금은 환경정책 속에서는 안으로는 주거양식의 대변혁을 의미하는 모든 아파트의 쓰레기투입구 폐쇄가 주거생활에 엄청난 불편과 번거로움을 가져옴에도 별다른 혼란과 저항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한번 해 보자’직무열의가 제도시행의 원인
’93년에 확정된 국가폐기물종합계획의 실행, 특히 지방자치제의 수거·운반장비 현대화에 요구되는 재원배분이 최고정책결정자의 지대한 관심과 내무행정 쪽의 협조로 순조롭게 이행된 것 또한 쓰레기종량제의 시행을 위한 선행조건 마련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수도권매립지, 부산의 반송동매립지, 화성특정폐기물매립지, 광주, 대전, 전주, 청주, 옥천, 창원, 통영 등지에서의 불법매립지에 대한 지역주민의 강력한 피해대책요구와 광역매립지의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의 과격한 집단행동과 환경운동단체들의 조직적인 정부 압박 등은 부분적으로 약간의 일탈양태가 없지 않았다.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다같이 자성하고 걱정을 해야 할 점이 있긴 하였으나 폐기물관리의 발전 및 종량제의 시행을 위하여 빠트릴 수 없는 국민적 관심과 위생적인 처리시설의 건설·운영이라는 전제요건을 구비하는 데에 기여한 점 또한 언급을 빠트릴 수 없다.
어느 사회제도나 마찬가지이지만 제도운용을 하는 인력의 직무능력 및 정신 자세가 그 제도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인자가 된다.
집필(執筆)은 능력평정의 제척(除斥)사유에 해당될 수 있으므로 직무능력의 평가는 잠시 접어두고 자세변화를 삽화(揷話)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행정분위기의 파악에 알맞을 것이다.
그 당시 격무에 시달린 나머지 폐기물관리업무 담당자들 사이에 곧 행정조직에서 폐기물이 된다는 자조어린 푸념들이 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과의 접촉에서 느껴지는 온정과 예상하지 않은 출입기자들의 조용한 격려에 힘입어 ‘한번 해 보자’라는 오기에 가까운 직무열의로 뒤바뀐 측면 또한 제도시행의 내부적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끝으로 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도 명확하게 정리가 안 된 분야로 추정되지만 폐기물 관련 통계의 정확한 입수경로 확보를 위한 행정의욕이 가까스로 정상궤도에 진입하고 있던 수도권매립지의 운영과 연대하여 종량제시행의 밑바닥에 깊숙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여기서 밝혀둔다.
제도시행의 명암
잘못된 오물청소법 인식, 폐기물매립지 문전박대
아직도 완전히 사라자자 않은 것은 아니지만 ’90년대 이전 우리국민과 정책결정자중에는 ‘폐기물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잘 처리된 것’이라는 그릇된 오물청소법적 인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은 쓰레기와 함께 영구히 위생매립 되어져야 할 것이고 이는 현대문명이 쓰레기문제의 해소를 숙명적으로 짊어지고 있으며, 인류생존 조건의 유지확보가 바로 이 문제에 직결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자 하는 것이다.
당시 이 잘못된 인식 때문에 사회존속의 기초시설인 폐기물매립지가 3개월이 멀다하고 이 계곡 저 늪지로 제대로 된 시설 한 번 거치지 못한 채 떠돌이 매립장으로 모든 지역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알량한 선진국으로의 진입치장에도 불구하고 쓰레기 1인당 발생량 최상위그룹, 위생매립지 한 두 개, 덩그러니 불구덕 만이 설치된 소각시설에다 과잉소비와 자원낭비풍조가 휩쓸고 있었다.
쓰레기관리 수수료는 건물면적과 재산세액을 기준으로 하는 고정률제로, 중간 및 최종처리의 비용과 오염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비용은 전연 반영이 안 되었고, 그나마 수입이 실제투입비용의 14%에 불과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수수료가 아니라, 위생처리와 이에 따르는 사회손실을 고려한 참된 쓰레기관리수수료를 국민들이 부담하게 함으로써 인간생존의 본질조건에 대한 이러한 외면상태를 한국사회에서 점차로 쓸어버리고 배출량의 억제와 재활용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95년 1월 1일부터 쓰레기종량제가 시행되었다.
행정질서의무 위반에 고발포상금제 확대등 가슴 아파
’95년 1월 7일자 C일보의 사설은 제도시행을 하나의 생활혁명으로까지 의미를 부여하였고, 서둘러 시행하면서 노출된 재활용체계의 미비, 환경산업 및 시장의 육성 불비, 서민부담의 가중과 국민생활상 불편 등의 예견된 문제점은 환경적으로 바람직한 생산, 유통, 소비 및 폐기양식의 변화로 극복될 수 있다고 판단되었다.
그리고 종래의 방만과 무절제, 허영과 소비체질이 검약과 절제, 내실과 자성의 사회체질로 고양되는 기본 틀을 형성할 것으로 예단하였다.
제도시행을 먼발치서 바라보면서 어둡고 안타까운 점은 제도시행 이후 골목길 청소를 통한 공동체 의식의 확인기회가 드물어지고, 1회용 비닐 수거봉투로 매립지의 안정화에 지장을 초래함과 무단소각 및 불법투기의 범람현상을 들 수 있겠다.
더욱 가슴 아프고 안타까움을 안겨주는 것은 이러한 행정질서의무의 위반에 과태료 인상과 고발포상금제의 확대로 대처하는 행정현실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양심을 팔지 말자는 설득노력이 행여나 과태료 처벌 위협 및 포상에 의한 고발신고 독려에 밀려나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그러면서 제도가 숨쉴 수 있도록 기꺼이 참여했고, 또 하고 계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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