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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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어머니의 재혼
역사의 최고 재혼녀는 순비 허씨(順妃 許氏 1271년~1335년)가 아닐까. 그녀의 첫 남편은 고려 왕족인 왕현이다. 금실 좋은 부부는 3남 4녀를 두었다. 그러나 남편이 수를 다하지 못해 죽었다. 7명의 자녀를 낳고, 홀로 된 여인은 비통한 심정에 잠겼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왕족에게 시집 간 장밋빛 인생이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녀의 나이는 불혹을 눈앞에 둔 38세였다. 이미 체력이 약해지고, 얼굴과 목에 주름이 하나 둘씩 생기는 중년이었다.
그런데 반전이 생긴다. 중년 여인의 향기에 취한 왕세자가 그녀를 후비로 삼은 것이다. 왕세자는 훗날 충선왕(1275~1313)으로 즉위한다.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왕세자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그녀의 자녀 7명을 모두 왕세자의 자녀로 입적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는 7명의 백성이 훗날 왕자와 공주로 신분 상승되는 의미가 있다. 4살 연하인 왕세자의 불같은 구애에 여인의 가슴은 서서히 무너진다.
7명의 자녀를 둔 나이 든 과부가 왕세자를 사랑의 포로로 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선녀와 같은 빼어난 미모와 예술적 재능 덕분으로 생각할 수 있다. 고려의 문인 이제현은 익재난고에서 그녀의 미모와 예술성을 극찬했다.
‘영특한 기운을 받고 태어난 여인은 고움과 아름다움이 마치 선녀(仙女)와 같았다. 얼굴은 연꽃보다 화려하고 기품은 난초 향기도 무색했다. 은하수에 목욕한 듯했다. 달빛 아래서 부는 옥퉁소는 산에서 우는 봉(鳳)을 감동시키고, 파도에 어른거리는 비단 버선 신은 모습은 마치 낙포(洛浦)에 노니는 용을 걸리 듯 했다.’
충선왕은 그녀에게 프러포즈할 때 여러 아내를 두고 있었다. 몽골 여인인 계국대장공주와 의비가 있었다. 또 고려 여인인 정비, 순화원비, 조비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미모와 예술적 마력에 왕세자는 깊이 빠져 들었다. 왕세자는 즉위한 후에 궁에 들어온 여인을 순비로 책봉하고 3남 4녀를 왕자와 공주로 예우했다.
순비의 딸 중 셋째는 원나라 4대 황제인 인종의 후비인 백안홀독 황후가 된다. 인종이 태자 시절에 비가 된 백안홀독은 어머니인 순비를 닮아 궁중음악과 악기를 다루는 예술성이 풍부했다. 순비는 황후인 딸 덕분에 원나라 천자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에 영원함은 없다. 순비에게 모든 것을 걸듯했던 충선왕에게 새로운 여인이 생겼다. 충선왕은 아버지인 충렬왕의 후궁인 숙창원비 김씨를 불러들였다. 패륜 행위를 한 왕은 그녀를 숙비(淑妃)로 봉했다. 순비와 숙비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연적이 되었다. 연회 때 두 여인은 옷을 다섯 번이나 갈아입으면서 왕의 눈길을 잡으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순비는 세월의 두께를 견디지 못했다. 왕은 눈길을 계속 숙비에게 옮겼다. 사랑을 잃을 위기에 빠진 순비는 셋째 딸에게 도움을 청했다. 사위인 원나라 태자(훗날 인종)에게 청을 해 숙비를 연경으로 불러들이게 했다. 이때 격구로 태자의 마음을 얻었던 중랑장 윤길보가 손을 써 숙비의 입조는 막았다.
그렇게 사랑을 잃은 순비는 65세에 숨을 거뒀다. 두 번 째 남편인 충선왕이 죽은 지 4년 후다. 38세에 재혼한 순비는 충선왕과의 사이에 자녀는 두지 못했다. 고려시대의 여성 폐경은 현대인에 비해 5~10년 정도 일찍 됐을 것으로 보인다. 순비도 재혼 직후에 임신 능력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다.
순비 허씨가 자녀를 왕자와 공주로 만들고 원나라 황후를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고려 시대의 여성 재혼에 관한 사회적 인식 덕분이다. 고려시대에 여인의 재혼은 큰 부담이 없었다. 또 자녀도 사회적 차별이 없었다. 왕실에서의 재혼도 이상하지 않았다. 왕비 중에는 충숙왕의 아내인 수비 권씨 등 재혼녀가 가끔 보인다.
이 같은 맥락에서 순비 허씨는 제2의 결혼 삶이 풍족할 수 있었다. 고려의 풍속에 대해 송나라는 비판적인 시각이었다.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고려인은 쉽게 혼인하고 쉽게 이혼한다. 예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썼다. 그런데 행복의 조건으로 보면 송나라 보다 고려가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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