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전 세계적으로 홍수의 빈도와 규모가 커지면서 인명 피해와 기반시설 손상, 경제적 충격이 커지는 가운데, 산림이 대형 홍수까지 완화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오랜 학술 논쟁에 대해 새로운 정리가 나왔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Ambio 저널에서 기존 주류 연구가 대형 홍수에 대한 산림의 효과를 과소평가해 왔으며, 더 엄밀한 분석 틀을 적용하면 숲은 소규모는 물론 대규모 홍수까지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연구는 자연기반해법(NBS)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산림의 홍수 저감 효과를 둘러싼 과학적 근거를 다시 검토했다. 연구진은 지금까지 널리 쓰여 온 ‘결정론적 접근’이 애초에 적절하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 검증 가능성이 낮은 가설과 비인과적 실험 설계에 의존해 왔다고 비판했다. 그 결과 “숲은 큰 홍수에는 별 효과가 없다”는 결론 역시 과학적으로 방어하기 어렵다고 봤다.
연구의 핵심은 홍수 자체가 본질적으로 확률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강우, 적설, 선행 토양 수분, 지형, 저류 능력 등 여러 요인이 시공간적으로 복합 작용해 홍수가 발생하기 때문에, 특정 단일 사건을 기계적으로 비교하는 방식으로는 숲의 영향을 제대로 가려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한계를 보완하려면 사건 하나하나를 맞대응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같은 빈도 또는 같은 규모의 홍수군을 비교하는 확률론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존 결정론적 접근은 같은 폭우나 같은 융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산림이 있는 유역과 벌채된 유역의 홍수 크기를 직접 비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토양 습윤 상태나 적설량, 유역 내 저장능력 같은 다른 핵심 변수를 통제하지 못해 인과관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큰 비가 오면 어차피 저장능력이 한계에 이르므로 숲의 효과가 사라진다”는 기존 논리는, 대형 홍수의 발생 빈도 변화 자체를 놓치게 만드는 자기충족적 해석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확률론적 접근은 산림 변화 전후의 홍수빈도곡선을 비교해, 같은 재현기간의 홍수가 얼마나 더 자주 일어나는지, 혹은 같은 규모의 홍수가 얼마나 더 커지는지를 함께 본다. 이 방법으로는 산림 감소 이후 대형 홍수의 빈도와 규모가 함께 커질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실제로 확률론적 연구들이 소규모·중규모·대규모 홍수 전반에서 산림이 완화 효과를 가질 수 있음을 집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정리했다.
연구진은 산림이 홍수를 줄이는 메커니즘도 제시했다. 숲은 강수의 차단과 증발산을 통해 유역의 수분 상태를 바꾸고, 토양 침투와 지하수 함양을 높여 유역의 저장능력을 키운다. 반대로 산림이 줄어들면 토양이 더 젖은 상태로 유지되고 저장 여력이 감소해, 같은 강우 조건에서도 더 잦고 더 큰 홍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눈이 많이 쌓이는 지역에서는 벌채 이후 적설 축적과 융설 에너지 증가가 홍수 증폭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책적 함의도 분명하다. 연구진은 기후변화만을 홍수 위험의 주된 원인으로 강조할 경우, 토지이용과 산림 관리라는 지역 차원의 대응 수단이 과소평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향후 홍수 관리와 적응 정책은 기후 요인뿐 아니라 산림 훼손과 토지이용 변화의 영향을 함께 따지는 인과적 분석 위에서 설계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기존의 비인과적 결론을 반영한 정부·기술 지침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홍수 관리가 회색 인프라 중심 대응을 넘어 유역 단위의 산림 보전·복원, 도시숲, 녹지, 저류지 조성 등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엄밀한 확률론적 분석이 축적될수록 산림 기반 자연기반해법의 비용효율성과 효과를 더 분명히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불확실성이 커지는 기후위기 시대일수록 올바른 이유로 올바른 답을 찾는 과학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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