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 "조선최고 명문가 백강 이경여 가문 발굴"

'기호유학 상징' 재평가 시작...금강누정선유길 추진 동력 계기
박원정 | eco@ecomedia.co.kr | 입력 2017-11-06 15: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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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강 이경여가 북벌 관련 상소를 올렸다. 이에 대한 효종의 비답 중 한 구절을 손자 이이명

이 부여의 백강마을 뒷산 바위에 새겼다. <사진제공=부여군> 

역사에서 잠자고 있는 조선 최고의 명문가 스토리가 발굴된다.

 

충남 부여군이 조선 인조와 효종 때 영의정으로 북벌을 주도한 백강 이경여 가문을 기호유학의 상징이자 관광 콘텐츠로 적극 개발한다. 

 
부여를 전략구상기지로 삼고 현실적 자강론을 전개한 백강 이경여 가문을 부여를 대표하는 유교자산으로 발굴한다는 것이다.

 

부여군이 추진하고 있는 금강누정선유길을 대표할 만한 가치와 스토리를 갖추고 있어 추진동력으로 삼는다는 복안이다.


백강 이경여는 학문과 현실을 융합한 세종대왕 7대손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이경여 가문에서는 3대 연속 문형, 6정승, 9판서를 배출했다. 3대 연속 문형 배출 집안이 조선에 불과 4곳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백강 가문의 성과는 놀랍다.

 
이경여 가문은 현대적 개념으로도 명문가이다. 성리학에 경도된 조선사회에서 문학, 정치는 물론 수학, 음악, 과학 등 다방면에 인재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최고 과학자 이민철, 수학자 이이명, 천문학자 이기지, 문인화가 이인상, 음악가 이영유 등이 후손이다.


실사구시의 가풍은 집안의 흐름인 현실 자강론과 관계가 깊다. 옛 영토를 수복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발달이 선행되어야 하며, 북벌을 위해 현실적인 과학과 기술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이이명은 청나라 북경과 만주가 포함된 북방지도를 세밀하게 그렸다.

 

이경여와 10만 정예병 양성, 효종과 대재각, 이민서의 이순신 등 민족영웅 발굴, 이사명의 12만 화포병 육성 등 이 집안에는 북벌의 큰 움직임이 있었다. 이와 함께 조선의 150년 베스트셀러인 이봉상 도망사건 등 비화도 한 보따리다.


교훈적인 대서사시의 역사 무대는 부여의 백마강이다. 이경여는 49세에 부여에 내려와 아들들과 조카들을 집중 훈육했고, 또 영의정에서 물러난 뒤 부여에서 비밀리에 북벌을 지휘했다. 그 결과 부여가 스토리의 보고, 비화의 산실이 됐다.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 백강마을에 있는 부산서원이다. 1719년(숙종 45)에 이경여

와 김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사진제공=부여군> 

백강 이경여는 최근 영화 남한산성에서 농도깊은 논리싸움을 하는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을 청나라 심약의 감옥에서 화해시키기도 했다.

 
심양에 같이 잡혀갔던 백강 이경여 선생은 "두 노인의 경·권이 각기 나라를 위함이라(二老經權各爲公)/하늘을 떠받친 큰 절개요, 한 시대를 건진 큰 공이죠.(擎天大節濟時功)/이제야 순리 따라 저절로 함께 생각이 같아졌지만(如今爛만同歸地)/모두가 심양 남관의 백발 늙은이가 되었네(俱是南館白首翁)"라고 중재했다. 백강 이경여의 중재는 우리나라 척화파와 주화파가 현실적 자강론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놓았다.


이용우 부여군수는 "백강 이경여 가문을 관광 콘텐츠로 개발해 충청유교문화권 광역관광사업의 추진동력으로 삼을 계획"이라며 "현실중심 기호유교가 부여 금강누정선유길 사업을 통해 어떻게 구체화될지 기대해 달라"라고 말했다.

[환경미디어 박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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