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인문학] 홍성재 박사의 모발 문화 탐험
모발은 인상을 좌우하고, 인생에도 영향을 미친다. 동양과 서양,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항산화제와 성장인자 도입으로 탈모 치료에서 한 획을 긋고 있는 홍성재 박사가 동서고금의 모발 문화 산책을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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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이순신 장군과 머리카락
“흰 머리카락 여남은 개를 뽑았다. 흰 머리가 나는 것은 괜찮지만 늙으신 어머니께 죄송스럽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1593년 6월12일에 쓴 일기의 내용이다.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은 제해권을 장악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때 어머니 초계 변씨를 군영 인근에 모셨다. 이 일기는 전라좌수사인 그가 짬을 내 어머니를 뵈러 가는 기록이다. 이때 나이는 49세이고, 어머니는 80세였다.
쉰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는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순신은 흰 머리카락을 뽑고 어머니에게 갔다. 이는 어머니가 나이를 의식하지 못하게 하는 세심함이다. 세상의 어머니 모두는 아들을 보면 반가워한다. 전쟁 중에 군인인 아들이 찾아오면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들의 얼굴을 찬찬히 어루만질 게 뻔하다.
이때 문득 아들의 귀밑이 서리처럼 하얗게 물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아들의 나이를 셈하고, 자신의 나이도 계산할 게 자명하다. 그러나 검은 머리의 아들을 보면 어머니의 나이는 더 이상 들지 않는다. 항상 어리게 생각되는 아들, 그 시절에서 머문다. 이순신 장군은 이를 생각해 흰 머리카락을 뽑고 어머니를 뵌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에 대한 정성은 집안의 흥망과도 연관이 있다. 이순신 집안은 꽤 이름 났었다. 5대조인 이변이 대제학과 영중추부사, 증조부 이거는 병조참의를 지냈다. 잘 나가던 집안은 조부 이백록 때 꼬였다. 진사 시험에 합격한 이백록은 정치 실세인 조광조에게 줄을 댔다. 그러나 급진개혁 성향의 조광조가 정권 다툼에 져 처형됐다. 이백록과 이순신의 아버지인 이정은 정치적 끈을 잃었다. 더욱이 문과에도 합격하지 못했다.
이순신은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가 직장을 잡지 못한 어려운 상황에서 태어났다.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는 집안의 중흥을 열망했다. 아들 이름을 중국 고대의 삼황오제 중에서 복희씨, 요 임금, 순 임금, 우 임금에서 따 지었다. 집안의 돌림자인 신(臣)을 곁들여 큰아들을 희신(羲臣), 둘째아들을 요신(堯臣), 셋째아들을 순신(舜臣), 넷째아들을 우신(禹臣)으로 했다. 큰 인물이 되어 집안과 나라를 일으키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이순신은 32세에 무과에 급제했다. 무인으로 함경도와 전라도에서 근무한 그는 47세인 1591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부임한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머니를 충청도 아산에서 근무지인 전라좌수영이 있는 여수로 모셨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찾아 뵈었다. 1593년 8월에 군영을 한산도로 옮긴 뒤에는 300리 길 여수에 왕래하는 게 여의치 않았다. 이때의 일기에는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이 더욱 드러난다.
난중일기로 볼 때 쉰 살에 가까운 이순신 장군의 모발은 검은색으로 추정된다. 다만 귀밑의 머리카락에 흰 물결이 이는 정도인 듯하다. 만약 모발이 반백 정도라면 흰 머리카락을 뽑을 필요가 없다. 당시 이순신의 모발은 흰 색이 몇 십 개 정도에 불과했기에 여남은 개를 제거한 것이다. 모발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흰색으로 변한다. 전쟁 중의 극심한 마음 고생 속에서도 검은색을 유지한 것은 타고난 흑발 체질로 봐야 한다.
사람의 모발은 원래 흰색이다. 모근에서 움틀 때는 오로지 흰색 하나다. 황인, 백인, 흑인 모두 그렇다. 모발은 자라면서 색이 변한다. 머리카락 색은 모낭 속 유멜라닌과 페오멜라닌 색소의 영향을 받는다. 유멜라닌이 많으면 흑발이 되고, 페오메라닌이 많으면 금발에 가깝게 된다. 이 같은 색소는 한정돼 있다.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노화가 진행될수록 멜라닌 세포 수가 줄고, 기능도 떨어진다. 나이가 들면 원래의 모발인 흰색으로 바뀌는 원리다.
흰머리는 귀밑에서 시작해 옆머리, 정수리, 뒷머리로 진행된다. 한국인은 일반적으로 40대부터 흰머리가 모발에 섞인다. 모발은 백에서 시작해 흑(또는 금색이나 갈색)으로 살다가 다시 백으로 간다. 이순신 장군은 이 같은 자연섭리를 거부하면서까지 어머니를 생각한 효자였다. 머리카락을 통해 장군 이순신이 아니라 효자 이순신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홍성재 웅선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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