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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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김유신의 정력관과 김춘추의 체력
‘체력은 국력이다.’ 이 말은 동서고금에 다 해당된다. 전통시대에는 체력이 아예 국방력이었다. 첨단무기가 없던 시대라 몸으로 상대를 제압해야 했다. 말을 타고 활을 쏘려면 강인한 체력이 필수다.
고대 동양에서는 전투체력의 일환으로 축구를 활용했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는 ‘제나라 사람이 모두 축구를 했다’고 적었고, 전한시대 인물 유향은 “한식에 답축을 하는데 황제가 만들었다. 병세(兵勢)의 기본이 된다”고 했다. 옛 문헌에는 축구를 축국(蹴鞠)으로 표현했다.
상무정신이 강한 고구려를 비롯하여 백제와 신라에서도 축구가 성행했다. 구당서(舊唐書)는 고구려인을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인능축국(人能蹴鞠)’으로 묘사했다. 수서(隋書) 동이전 백제조에는 ‘농주(弄珠 축국) 등의 놀이가 행해졌다’는 문장이 있다. 신라도 강철체력의 군인 육성을 위해 축구를 보급했다. 사관학교와 부사관학교 재학생들인 화랑들이 축구로 체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키웠다. 당시 축구공은 짐승의 가죽에 꿩의 깃털을 꽂아 만들었다.
화랑세기에는 법흥왕 때 축구를 즐기는 기록이 있다. 또 100여년이 지난 태종무열왕 때에 김춘추가 김유신과 축구 놀이를 한 내용이 삼국유사의 기이편 태종춘추공(太宗春秋公) 부분에 소개돼 있다. 여기에는 축구에 숨은 사랑과 야망이 담겨 있다.
태종대왕(김춘추)의 비는 문명왕후(문희)이니 김유신의 막내 누이다. 하루는 문희의 언니인 보희가 산에 올라 오줌을 누니 서울에 가득 차는 꿈을 꿨다. 문희는 보희로부터 꿈을 샀다. 문희는 옷깃을 벌리고 보희의 꿈을 받았다. 10일 후 김유신과 김춘추가 축구를 했다. 김유신은 일부러 김춘추의 옷을 밟았다. 김유신은 떨어진 옷끈을 단다는 명분으로 김춘수와 함께 집으로 왔다. 김유신은 두 여동생에게 꿰매주기를 부탁했고, 문희가 옷을 받았다. 김춘추는 김유신의 뜻을 알고 문희와 사랑하게 되었다.
이 혼인은 훗날 삼국통일의 초석이 된다. 김유신과 김춘추가 결혼동맹으로 세를 부풀린 결과다. 축구와 옷고름은 김유신의 각본설이 제기된다. 김유신은 멸망한 가야왕족의 후손이다. 신라왕족으로 편입됐지만 정권을 잡을 신분은 아니었다. 김춘추는 폐위된 왕의 후손이다. 비주류 김유신은 왕손으로 똑똑한 김춘추를 파트너 삼아 정치적 출세를 꿈꿨다는 해석이다. 이를 위해 여동생을 시집보내는 작전을 짰다는 것이다. 문헌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정치 생리상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성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인 필자는 남성의 정력 측면에서 풀이하고 싶다. 축구선수는 운동선수 중에서도 스태미너가 출중하다. 실제로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국가대표 선수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축구선수들의 기초체력이 다른 구기종목 선수들보다 매우 뛰어났다. 심폐능력, 지구력, 근지구력, 민첩성 등이 우수했다. 축구선수들의 운동지속시간은 평균 16~17분으로 다른 종목 선수보다 3~5분이 많았다. 이는 강인한 체력과 지구력을 요구되는 축구의 특성과 연관이 있다.
그런데 김춘추는 엄청난 지구력과 순발력의 화신이었다. 김유신은 이런 김춘추가 정력도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왕손으로 훈남에, 체력도 넘치는 그를 여동생의 짝으로 맺어주고 싶었을 수 있다. 이를 위해 단추를 떨어뜨리고, 집으로 안내해 여동생을 선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기초체력과 성 능력은 반드시 비례하지만은 않는다. 체력이 뛰어나면 건강이 좋아 활동적이게 된다. 그렇다고 남성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지는 않는다. 생리학적 사실을 알 수 없었던 김유신은 남자의 직감, 경험적 측면에서 김춘추를 선택했다고 보면 지나칠까.
한의학적 관점에서 체력이 강하면 성욕이 왕성할 수 있다. 그러나 강한 정력(精力)으로 일반화는 어렵다. 정력은 정신과 육체의 결합이다. 체력은 물론 심리적 안정 그리고 오장육부와 기혈의 건강정도와 관계가 있다.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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