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여인, 앙투아네트의 사랑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4>
온라인팀 | eco@ecomedia.co.kr | 입력 2015-11-23 1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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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4> 유럽의 여인, 앙투아네트의 사랑


첫날밤은 설렘이고 두려움이다. 생 초보에게만 그럴까. 첫날밤은 정신력이다.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 과도한 긴장으로 남성이 서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전무대에서 단련된 프로도 결혼 첫날밤에 실패할 수 있다. 왕도 자신감을 잃을 수도 있다. 그 때 파트너인 여성의 마음은 심히 심란할 수밖에 없다.


공주가 그런 일을 겪었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프랑스 루이 16세의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의 공주다. 18세기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적대국이었다. 공교롭게 양국 모두 신흥강국 프로이센에게 위협을 받고 있었다. 두 나라 왕실은 정략결혼으로 동맹을 강화한다. 프랑스 왕위 계승자와 오스트리아의 공주의 결합이다.


그런데 루이 16세는 밤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남자였다. 앙투아네트는 첫날밤부터 6년간 신세한탄을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렇다고 궁전을 박차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법. 부부는 숱한 날을 고민했다. 당시 의사들이 진단한 루이 16세의 병명은 발기부전이다. 발기가 충분하지 않거나 지속되지 않아 성생활을 만족할 수 없는 질환이다.


한의학에서는 양위증(陽痿症)이나 음위증(陰萎症)으로 표현한다. 장기간의 과도한 사정으로 성신경이 쇠약해지거나 심신의 과로가 누적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불안이나 우울 같은 정서적인 문제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치료는 남자에게 좋다는 육종용과 파극천을 비롯하여 복분자, 오미자, 구기자, 인삼, 숙지황 등으로 한다.


루이 16세는 왕이 된 뒤에도 남성이 서지 않아 왕비와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성격도 나약하고 우유부단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인정하지 않았다. 성격도 차이가 있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화려하고 활달한 성격인 반면 루이 16세는 조용하고 사색적이었다.


자석은 같은 성질은 밀어내고 반대 성질과 화합한다. 두 사람도 N극과 S극이 친밀하듯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밤일을 못하는 왕은 왕비 앞에서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는 수많은 보석을 제공함으로써 그녀에게 밤을 잊게 하곤 했다. 베르사유의 프티 트리아농 궁전을 선물하고, 나라 일에도 관여하게 했다.


불면의 밤이 지나고 또 지났다. 그렇게 몇 해가 흘렀다. 다행히 의술의 도움으로 루이 16세는 결혼 6년이 지나 남성을 뽐내게 됐다. 낮에도 왕, 밤에도 왕이 된 것이다. 웨딩마치 7년 만에 첫 아이를 낳은 부부는 이후 셋을 더 생산했다. 루이 16세는 오로지 아내에게만 충실했다. 여느 왕들과는 다르게 여인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발기부전 전력의 남편과 산 아내는 구설수에 올랐다. 정치를 한 게 시기의 원인이었다. 당시까지 프랑스 왕실에서 왕비는 정치를 하지 않았다. 정치일선에 나선 그녀는 많은 남성으로부터 눈엣가시 존재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프랑스의 국고는 계속 비었다. 미국독립전쟁 지원과 누적된 왕실의 사치가 주요 원인이었다.


그 멍에를 왕비가 짊어진다. 프랑스의 남성들은 그녀를 ‘적자 국고’,'베르사이유의 장미’라고 손가락질했다. 파리에서는 그녀가 사치의 대명사가 되었다. 540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 구입의 배후 인물로 회자되었다. 스웨덴 귀족 한스 악셀 폰 페르센 백작과의 은밀한 소문도 퍼졌다. 프랑스 혁명 후 공포정치를 펼친 로베스피에르는 그녀를 ‘만족할 줄 모르는 자궁의 충동 연인’이라고 비난했다.


1789년 프랑스에서는 시민혁명이 일어난다. 세금문제에서 촉발된 혁명은 사회 지배층의 권리 독점에 대한 반발이었다. 사회적 권리가 거의 없던 농민과 시민의 분노는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에도 담겨있다.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 너희의 군대를 만들어라. 나아가자, 나아가자. 더러운 피를 물처럼 흐르게 하자!" 시민혁명으로 왕과 왕비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녀에게는 수많은 죄목이 주어졌다. 오스트리아와의 결탁, 백성 기만, 전쟁유발, 루이 16세 타락 요인, 재정 낭비, 정부 부패 혐의 등이다.


이 모든 것을 그녀는 인정하지 않았다. 정권을 빼앗긴 패장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두대에서도 원통해한 죄목이 있다. 7살 아들과의 근친상간 죄목이다. 그녀는 재판 때 방청객에게 치욕을 하소연했다. “어머니들에게 물어봅니다. 할머니들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근친상간을 믿으시나요. 프랑스의 모든 어머니들을 모독하는 말을 믿으시나요.”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형집행 하루 전날, 시누이 엘리자베트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나의 적들의 죄악을 모두 용서합니다.” 공주, 정략결혼 희생자, 발기부전 남편, 여성 정치인 시초, 단두대의 이슬, 근친상간의 모욕--- ---.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는 남성 정치인들에 의해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의 가장 큰 숭고함을 모독당한 슬픈 여인이 아닐까.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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