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고, 기억하고, 무엇인가를 주고받았던 사람들을 떠나서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려고 하는가’ 1994년 출간 이래 45만부 이상 판매된 이정순 화가의 ‘강한 여자는 수채화처럼 산다’의 표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녀는 2013년까지 한양대 특임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후학들을 지도했다. 퇴임 후 그녀만의 작품세계를 구상하고 있는 그녀의 집에 들어서자 갤러리에 온듯한 거실 분위기에 기분이 한껏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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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순 화가 자택에 전시돼 있는 작품들 |
바이올렛과 샐먼핑크(Salmon Pink) 칼라가 어우러진 신비로운 색감과 독특한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한 여인상과 ‘피에타’ 등의 작품은 종교적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다. 특히 ‘피에타’는 이정순 화가가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십자가에서 내린 아들을 품에 안고 오열하는 성모의 크나큰 슬픔과 따뜻한 어머니의 마음을 그려냈다.
대작이기도 하거니와 작품이 주는 느낌이 장엄하기도 해서 작품 제작기간을 물었더니, “내가 그린 그림이지만 보고 있으면 평안함을 느끼고 치유 받는 경험을 한다. 어느 중견화가가 그림을 보고 ‘다른 그림을 보면서 이렇게 좋아해 본 적이 없다’며 극찬하기도 했다. 그림도 내 힘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영세받은 기운이 작용된 듯하다. 완성하기까지 두 달이 걸렸다”며,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어떤 이는 이 작품을 보고 ‘신에게 향하는 화가의 마음 자체가 보여진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이 화가의 마음과 신앙이 잘 담겨져 있다. “때로 지칠 때 이곳 소파에서 저 그림을 바라보면 근심이 모두 사라지고 스스로 평안을 느끼게 된다. 작품 어느 부분에도 더 수정을 할 곳이 없다” 며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처절함 보다는 주님의 뜻에 순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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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에타_ 127 x 270cm_ 한지, 혼합재료, 유화_ 2008 |
대대손손 이어가는 교육 환경과 예술적 재능은 최고의 가보
이정순 화가의 그림 재능은 아버지에게, 글 재능은 외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외할머니가 전래동화를 읽어주면서 서술, 진행, 결말 등을 잘 맺어줬고 훗날 책을 쓰는데 큰 작용을 했다”고 회상한다.
현재 작업실을 따로 두고 있지 않고 자택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사랑스러운 손자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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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너스의 탄생_ 91 x 72.5cm_ 혼합재료, 유화_ 2006 |
그녀는 피카소의 아버지가 아들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붓을 꺾은 일화를 예로 들며, 둘째 손자(희로, 8세)가 화이트보드에 그린 그림을 보여줬다. “나도 이 나이 때 이 정도는 못 그렸다. 어디서 따로 배운 것도 아닌데. 관찰력과 표현력이 좋다”며 손자의 재능을 칭찬했다.
이어서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것을 시도할 용기는 없어졌지만, 생각할 여유가 있다는 것과 소중한 느낌을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어 좋다”고 말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곧 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다. 살아있는 작품에 정성을 쏟는 것도 일종의 위대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손자들과 어울리는 생활을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고 했다.
이정순 화가는 현재 그림을 가르치고 있는 학생 중 한명은 장애를 갖고 있다며 “칭찬도 많이 하고 3년간 그림을 가르치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대견하다. 미술치료의 효과도 나타나 스스로 보람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오스트리아에서도 전신마비인 사람들이 미술을 통해 치료를 받는 경우를 봤다”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지금 매순간이 정말 소중하다”고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작품으로 전달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려고 관심을 갖고 있다. ‘작품 들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이 화가는 “내 작품은 쉽다. 다가서기 쉬운 요소들로 삶 자체가 제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잘 나타내려고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 사람들에게 여과없이 다가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누가 모전여전이라고 했던가, 딸인 김나미 한국체육인재육성재단 사무총장이 ‘다시 태어나도 운동을 할 것’이라고 한 것처럼, 그녀의 어머니 이정순 화가 또한 “다시 태어나도 지금과 같은 삶, 그림 그리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꽃, 자연 그리고 인간. 사위에 보이는 모든 것을 행복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정순 화가. 현재 삶에 대한 긍정이 오롯이 그림에 나타나는 그의 작품에는 생명에 대한 깊은 애정이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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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순 화가 |
“어떤 존재들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의 능력은 그 한계를 초월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초월의 힘이 그림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고희의 연륜에도 청초하기까지 한 그녀의 모습. 어떤 수식어보다도 ‘김나미의 어머니’로 소개되는 것을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이정순 화가.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며, 여린 손으로 손을 꼭 쥐며, 우리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안녕을 했다. 조만간 다시 보자며….
[환경미디어 문광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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