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황태후와 황후가 연 기생방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온라인팀 | eco@ecomedia.co.kr | 입력 2016-02-18 11: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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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29> 전직 황태후와 황후가 연 기생방


중국 대륙 역사에서 420년부터 589년까지 약 170년을 남북조시대라고 한다. 수나라가 중원을 차지하기 직전의 혼란기다. 남조는 한족이 차례로 세운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의 4왕조가 있었다.

 

북방민족 중심의 북조는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혼란이 북위(北魏)로 정비된 뒤, 동위(東魏) 서위(西魏)로 분열됐다. 다시 북제(北齊) 북주(北周)가 주인이 된 역사시기다. 남조와 북조는 모두 수나라로 흡수됐다. 우리나라 역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다.

혼란기인 남북조 국가 중 하나가 북제다. 건국주 고양은 선비족이다. 이 나라에 성에 목마른 여인이 있었다. 황태후에서 기녀까지의 삶을 산 호태후다. 그녀는 초대황제인 문선제 고양이 후궁을 뽑을 때 선발됐다. 용모가 빼어난 그녀는 고양의 아홉 번 째 아들인 고담의 아내가 된다. 고담은 북제가 건국되자 장광왕(長廣王)에 봉해졌고, 그녀도 장광왕비가 됐다.

역사에 흔적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는 그녀는 남편의 권력욕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남편 고담은 아버지가 죽자 정치적 야심을 드러낸다. 다음 보위에 오른 민도왕 고은을 몰아냈다. 친형인 효소제 고연의 정권찬탈에 협력한 것이다. 효소제가 1년 만에 죽자 고담은 무성제로 즉위한다. 그녀도 황후로 신분이 상승된다.
 
무성제 고담은 호화방탕한 생활을 했다. 백성들을 부역에 내몰았다. 무성제는 황후인 호씨 외에도 이씨, 팽씨, 왕씨, 마씨 등의 후궁을 두었다. 또 형수인 이조아를 가까이 했다. 무성제는 주로 이조아의 거처인 소신궁에서 살았고, 남편이 외면한 호황후는 외로웠다. 선천적으로 몸이 뜨거웠던 황후는 내시를 눈여겨본다. 그중에 황제가 신임하는 화사개가 있었다. 그녀는 화사개에 은밀한 시선을 주었다. 야심가인 화사개는 계산을 했다.

 
화사개는 황후의 은밀한 눈빛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화사개는 정국을 쥐락펴락할 자신감을 얻었다. 황제는 향락에 빠져있고, 황후는 자신의 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황후의 남자로 자리한 그는 모략을 꾸몄다. 신하가 아닌 실제적인 권한을 갖고 싶었다. 또 황후와의 밀회가 아닌 공공연한 향락에 파묻히고 싶었다. 그녀는 황후와 말을 맞춰 황제에게 건의했다. “태자에게 황제를 물려주고 상황으로 편안한 삶을 즐기소서.”

음주가무에 빠져 한정치산자나 다름없던 무성제는 아들에게 양위했다. 그는 주색에 허우적거리다 3년 후 죽는다. 태자 고위가 즉위하자 호황후는 황태후로 신분이 바뀐다. 호태후와 화사개는 아예 숨길 것 없는 연인이 됐다. 두 사람의 치정에 대해 대신들 사이에서는 거친 말이 나왔다. 하지만 아들 고위는 우유부단했다.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 사이에 황궁 주변은 화사개의 사람들로 채워졌다. 화사개는 회양왕에 봉해졌다. 최고 실세가 된 것이다. 나라꼴과 엄마의 행태를 보다 못한 황제의 동생인 고엄이 비상수단으로 화사개를 암살했다.
 
그러나 호태후의 뜨거운 가슴은 식을 줄 몰랐다. 그녀는 예불을 명분삼아 절에 다니며 즐겼다. 부처의 제자인 담헌화상과 깊은 관계가 된 황태후는 절에서 비밀만남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담헌화상을 남편이 살아서 거처하던 침실까지 불러들였다. 담헌화상은 어느 순간 화사개가 누렸던 권력을 누리게 됐다. 담헌화상의 별명은 태상황이었다.

하루는 세상물정 모르는 황제 고위가 문안을 위해 어머니를 찾았다. 그런데 어머니 곁에 자태가 고운 여승 두 명이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문안을 마친 황제는 여승들을 침실로 불렀다. 그런데 두 여승은 침실에서 결사저항을 했다. 크게 화가 난 황제는 강제로 여승을 발가벗겼다. 여승들은 남장여자였다. 이들을 심문한 황제는 어머니가 미남 승려를 여자로 분장시켜 생활한 상황을 알게 됐다.


분노한 황제는 호태후의 남자들을 모두 참수했다. 호태후는 궁에 유폐 된다. 황실이 음행으로 얼룩진 나라가 잘 될 리 없다. 북제는 북주에 의해 멸망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라의 멸망은 호태후에게 자유를 준다. 채 40살이 안 된 호태후는 아예 즐기는 성생활을 선택한다. 즐기면서 돈도 버는 직업 전선에 나선다.

 

그것도 며느리인 황후 목사리와 함께 기방을 연다. 전직 황태후와 전직 황후가 연 기방은 불야성을 이뤘다. 장안의 권력자와 재력가가 줄을 섰다. 호태후는 며느리에게 말했다. “기녀 노름이 황후 노릇보다 재미있다.” 황태후에서 기녀로 추락했으면서도 만족한 호태후는 천하의 색녀가 아니었을까.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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