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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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징기즈칸의 1700만 명 후손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一紅)이다. 무소불위의 권력도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아름다운 꽃도 열흘 동안 피기는 어렵다. 인생무상을 은유하는 문장이다. 세계를 제패한 알렉산더는 34세에 생을 마감했고, 아시아와 유럽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 징기즈칸도 66년밖에 살지 못했다. 그들이 권력의 정상에 선 기간은 더 짧다.
제국을 다스린 황제나 이름 없는 백성이나 삶의 길이는 차이가 없다. 인생이 꽃핀 시간도 긴 역사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어떤 면에서는 출세한 사람이나 지지리도 궁상맞게 산 사람이나 도긴개긴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 후손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권력, 경제력, 지식력, 외모 등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은 후손이 많다.
대표적 인물이 징기즈칸이다. 그의 남자 후손은 무려 17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세계제국을 건설한 그는 정력 황제인 셈이다. 2003년 미국인류유전학회지에는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몽골의 유전 흔적(The genetic legacy of the Mongols)’이다. 학자들은 중앙아시아 남성 2123명의 Y염색체를 분석했다. Y염색체는 남성에게만 유전된다. Y염색체를 확인하면 부계로 이어진 혈연 분류가 가능하다.
분석 결과 연구대상 남성의 8%가 거의 동일한 Y유전자 보유로 나타났다. 92%는 다양한 모습이었다. 이는 8% 남성이 한 할아버지의 후예이고, 92%는 다른 남성의 피를 받았다는 의미다. 8%를 중앙아시아 전체 남자 인구로 바꾸면 1700만 명에 해당한다. 또 지구상 남성의 수로 환산하면 200명 당 1명이 한 명의 자손으로 추정된다.
그 한 명은 누구일까. 연구진은 생명을 퍼트린 한 명을 1000년 전의 인물로 추정했다. 오차 범위는 플러스 마이너스 300년이다. 700년 전에서 1300년 전 사이에 중앙아시아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 남성이 주인공 가능성이 높다. 후보는 단 한 명으로 좁혀진다. 1162년에 태어나 1227년에 죽은 징기즈칸이다. 역사상 최강의 정복자였던 징기즈칸을 몽골비사는 ‘눈에 불이 있고, 얼굴에는 빛이 있다’고 묘사했다.
유럽인들의 충격은 수백 년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다.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쇠망사에는 징기즈칸 앞에서 추풍낙엽인 세상을 읽을 수 있다.
“칭기즈칸과 그의 후손들이 진격에 술탄들이 쓰러졌다. 칼리파들이 넘어졌다. 카이사르들이 왕좌에서 떨었다. 그는 천수를 다했다. 최고의 영광 상태에서 죽었다. 그는 중국 정복을 유언으로 남겼다.”
세계를 쥐락펴락하고 유럽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간 징기즈칸이 엄청난 수의 여자를 거느린 것은 아니다. 전쟁터에서 평생 산 그는 중국의 황제들보다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물론 정복 과정에서 상당수 여인을 상대했을 수 있다. 그의 DNA가 널리 퍼진 것은 아들 손자 등의 후손이 최고 지배층으로 굳어진 결과다. 제국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그의 후손들은 수많은 자녀를 두었다.
장남인 주치가 40명의 아들을 두었고, 손자인 쿠빌라이에게도 22명의 아들이 있었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자녀도 생각할 수 있다. 세계제국의 지배자가 된 징기즈칸의 후손들은 다수의 여인과 만났고, 또 그 후손이 기하급수적으로 자녀를 생산하게 된다. 권력과 재력 덕분이다.
징기즈칸의 DNA가 확보되지 않았기에 단정적으로 1700만 명의 남성이 그의 후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 맥락에서 보면 그 외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성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인 필자는 징기즈칸의 후손 글을 보면서 퍼뜩 한 문장이 떠올랐다.
‘권력은 10년을 가지 못한다. 꽃도 10일을 가지 못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우월한 남성의 유전자는 1000만 명의 후손을 남긴다.’ 그러나 이 말은 요즘에는 거리가 있을 듯하다. 결혼도 미루고, 출산도 기피하는 현상 때문이다. 이래저래 힘든 세상이다. 이를 반영하듯, '나 혼자, 내 대에서만 잘 살면 된다'는 게 한두 명의 생각이 아닌 듯하다.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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