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간통을 없애려고 중매를 서다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온라인팀 | eco@ecomedia.co.kr | 입력 2016-05-09 11: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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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49> 왕, 간통을 없애려고 중매를 서다

    

결혼연령이 늦춰지고 결혼도 줄고 있다. 2015년의 한국의 혼인은 30만 2800여건이다.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혼인건수다. 인구 1천 명 당 혼인건수인 조(粗)혼인율은 5.9건이다.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다. 결혼 연령도 올라가고 있다. 2015년에 서른 살 여성을 기준으로 하면 10명 중 6명이 결혼하지 않았다. 2005년에 같은 기준의 미혼여성은 10명 중 4명이었다.

결혼이 줄고, 늦춰진다고 해서 성관계도 비례해 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합법적 성관계가 줄고, 비정상적 성관계가 늘 개연성이 있다. 식욕과 성욕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본능은 다소 참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외면할 수는 없다. 물론 고도로 수양된 인물이나 성직자들은 본능을 이겨낼 수 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막혔으면 뚫을 곳을 찾는다. 성적 능력이 왕성한 젊은이가 배우자가 없다면 해소할 곳을 찾게 된다. 자칫 음성적인 성 거래 시장 형성 등 비 건전 문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 같은 문제점 해소를 위해 조선의 왕은 중매를 서기도 했다. 대표적인 왕이 정조다.

임금이 마흔 두 살이던 1791년 신해년이다. 가난한 백성들이 혼인을 하지 못해 늙어간다는 보고를 들었다. 임금은 백성의 행복 추구권을 보장해야 한다. 남녀가 나이 들어서도 짝을 짓지 못하면 왕이 정치를 잘못하는 셈이다. 정조는 한성부에 지시한다. “나이가 찼으나 돈이 없어 혼인하지 못하는 한양백성을 전수 조사하라. 그들에게 혼인비용으로 돈 500푼과 포목 두 끗을 지급하라.”


성은 덕분에 한양에서는 노총각 노처녀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예외는 있는 법. 28세의 김씨 총각과 21세의 신씨 처녀였다.

두 남녀의 사연은 이덕무의 시문집인 아정유고에 ‘김신부부전’으로 소개돼 있다. 임금이 혼인을 하게 했기에 김신부부사혼기(金申夫婦賜婚記)라고도 한다. 한성판윤 구익의 보고에 의하면 총각은 김희집(金禧集)으로 현감 김사중의 서손(庶孫)이었다. 처녀 신씨(申氏)도 선비 신덕빈의 서녀였다.

나랏님의 과년한 한양백성 혼인령에 발맞춰 김희집은 본래 심씨(沈氏)와 약혼을 했다. 김희집은 국고 지원을 받아 결혼을 추진했다. 그런데 심씨 집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별 볼일 없는 문벌인 김희집에게 딸이 시집가는 것을 거부했다. 고민 끝에 심씨 집안에서는 딸의 의사를 존중했다. 배움이 적은 김희집의 아내가 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딸의 입장을 생각해 파혼을 했다.

처녀 신씨는 이씨 남성과 백년가약을 약속했었다. 그런데 이씨 남성은 더 좋은 여건의 혼처가 나자 신씨 처녀와의 약속을 저버렸다. 신씨 처녀를 배반하고 다른 여성과 혼인했다.

사랑에 울게 된 딱한 남녀의 사연을 들은 정조는 국조보조금을 더 확대하고, 둘의 혼처를 찾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과년한 남녀는 이미 다 결혼한 상태다. 딱히 두 사람의 짝을 찾을 수 없었다. 한성판윤 등 한성부 관리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왕조시대에는 고을에 나이가 꽉 차도록 혼인하지 못한 백성이 많으면 수령이 처벌받기도 했다. 더욱이 특별왕명이 내려진 상황이다. 두 사람을 혼인시키지 못하면 판서급인 한성판윤과 좌윤 우윤이 줄줄이 낙마할 처지다.

이때 서부령(西部令) 이승훈이 콜럼부스 달걀과 같은 묘안을 냈다. 김희집과 신씨 처녀를 짝 지으면 두 명을 한 번에 해결한다는 의견이었다. 관리들은 모두 박수를 쳤다. 이승훈은 김희집 집안을 설득하고, 한성부 주부 윤형은 신씨 집안에 이야기 했다. 두 집안은 배우자의 갑작스런 교체에 당황했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며 수긍했다.

보고를 받은 정조는 결혼 일체 비용을 국고로 지원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임금이 중매를 선 혼인이기에 호조판서 조정진은 신랑의 혼주 역할을, 선혜청 당상 이병모는 신부의 혼주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조정의 고관들이 줄지어 참여한 혼인식이 끝난 뒤 정조는 학자인 이덕무에게 김씨 부부의 혼인 내력을 글로 남기게 했다. 이것이 아정유고에 실린 김신부부전이다. 정조가 혼기를 놓친 백성의 짝 맺음에 적극 나선 것은 제대로 된 왕도정치의 실현이다. 왕은 하늘을 대신해 백성을 다스린다. 하늘의 뜻은 백성이 배부르고 따뜻하게 사는 것이다. 식욕을 충족해 몸을 보존하고. 성욕을 충족해 종족을 보존하게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인구가 많아져야 국방력도 튼튼해지고, 세금 수입도 많아진다. 
 
유교의 나라에서 종족 보존은 혼인관계에서만 가능하다. 성적인 결합은 부부관계에서만 정상이다. 나머지는 비정상이다. 조선시대에 혼인하지 않은 사람의 결합은 간통이다. 유부남과 유부녀의 관계, 유부남과 미혼녀의 관계, 유부녀와 미혼남의 관계도 간통이다.


특히 요즘 개념과 다른 것은 미혼남과 미혼녀의 성관계다. 요즘은 자연스런 행위지만 당시에는 간통이었다. 정조의 백성 혼인 프로젝트는 조선에서 간통을 없애는 일이기도 했다.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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