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CCTV 구관조, 사랑을 말하다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5>
온라인팀 | eco@ecomedia.co.kr | 입력 2015-11-25 10: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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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5>조선시대의 CCTV 구관조, 사랑을 말하다

앵무새는 세 가지 면에서 관심을 끈다. 하나는 알맹이 없는 겉치레 말을 잘하는 사람의 비유다. 또 하나는 부부간의 금실이다. 마지막으로 사람 말의 흉내다. 첫 번째 의미 없는 되풀이 말에 대해 앵무새는 기분이 나쁠 것이다. 사람에게 배운 대로 성실하게 말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랑의 상징성은 과대 포장된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짝을 잃은 앵무새는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래도 옛사람은 앵무새를 순결하게 보았다.

 

궁녀 선발 때 처녀성 확인 방법으로 녀석의 피를 팔목에 떨어뜨렸다. 피가 맺히면 처녀, 그렇지 않으면 경험녀로 판별했다. 현대인이 앵무새 사랑은 세 번째 이유인 말하는 데 있지 않을까.

말하는 대표적인 새가 앵무새다. 326종에 이르는 앵무새과의 상당수가 말을 할 잠재력이 있다. 훈련을 받으면 많은 앵무새가 간단한 단어를 이야기할 수 있다. 영리한 놈은 1백 단어가량 외우기도 한다. 앵무새와 유사한 능력의 새가 구관조다. 찌르레기과에 속하는 구관조도 사람 말을 흉내낼 수 있다. 두 종류의 새는 각각 장점이 있다. 앵무새는 단기교육, 많은 단어습득이 강점이다. 구관조는 정확한 발음, 소수단어가 특징이다.

앵무새와 구관조는 전통시대의 CCTV다. 주인의 어법을 사용했다. 일상사를 여과 없이 이실직고했다. 심지어 침실 대화도 중계했다. 앵무새는 동아시아 왕실에서 애완용으로 사육했고, 구관조는 조선시대의 일부 부유층이 길렀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흥덕왕이 앵무새의 사랑가를 작곡한 내용이 실려 있다. 당나라에서 선물 받은 앵무새 한 쌍 중 암컷이 죽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우는 수컷을 가엽게 여긴 왕은 거울을 새 앞에 설치했다. 수컷은 짝을 찾은 줄 알고 반갑게 달려가 애무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애달픔에 몸부림치던 수컷은 이내 죽고 만다. 왕은 가여운 앵무새를 위해 노래를 지었다. 
 
앵무새는 우리나라에서는 부부금실의 상징인데 비해 인도에서는 사랑 감시역으로 역할이 혁혁했다. 인도의 음란한 이야기를 적은 앵무칠십화(鸚鵡七十話)에는 장사를 떠나는 상인이 아내의 간통을 걱정하여 앵무새에게 감시를 시킨 내용이 나온다. 
 
구관조는 음악에 강점이 있다. 단어 못지않게 노래 재연을 잘한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에 기녀에게도 사랑받은 듯하다. 기녀집의 구관조 CCTV에 찍힌 ‘피우지도 못한 사랑’이 유형원의 반계수록에 전한다. 조선 후기 학자인 유형원은 국가의 개혁을 꿈꿨다, 제도의 개선책 등을 적은 책이 반계수록이다. 근엄하고 딱딱한 내용 중에 에로틱한 구관조가 슬쩍 등장한다.
  
예쁜 기생은 뭇 사내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섹시미 넘친 기생을 찾는 이가 많았다. 고을의 생원도 그 중의 한 명이다. 하루는 생원이 기생집을 찾았다. 그런데 대뜸 구관조가 말을 건다. “그대도 보았구려. 그대도 보았구료.” 홰를 치며 떠드는 구관조 소리에 사람이 몰려들었다. 기생집을 찾은 생원은 주위 사람들의 따거운 시선에 망신을 당한다.
  
그렇다면 구관조는 왜 생원을 망신 주었을까. 평소 이 구관조는 관음증이 있었다. 주인인 기생의 목욕 장면을 계속 지켜보았다. 아무리 새라고 하지만 기생 입장에서는 다소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목욕 때마다 욕실로 날아와 여체를 훔쳐보는 구관조에게 매번 협박을 했다.

 

 “너, 한 번만 더 보면 대머리를 만들어 버린다.” 숱하게 많이 들은 머리 단어를 노래처럼 인식한 구관조는 머리카락이 적은 사람을 보면 기억필름이 재생됐다. 빛나리를 기생의 몸을 훔쳐보다가 머리를 강제로 깎인 사람으로 인식한 것이다. 하필 생원은 대머리였다. 구관조는 주인이 없을 때 더 잘 중얼거린다. 기생이 없을 때 찾아온 생원은 구관조가 망신 주기에 적격이었으리라.
  
구관조는 말과 연관되기에 입구(口)자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자어는 9명의 벼슬아치를 뜻하는 구관조(九官鳥)다. 새 이름의 유래는 태국인 섬라국이다. 이 나라 관리 9명이 등산을 했다. 나무의 둥지에서 어미새와 아홉마리의 새끼가 있었다. 새끼를 보살피다 지친 어미새가 탈진 상태였다. 관리들은 아사 직전의 새끼들을 한 마리씩 집으로 가져갔다. 새가 어느 정도 자란 뒤 자연방사를 시도했다. 새들은 산으로 가지 않고 주인들의 주위를 맴돌았다. 새들은 관리들의 보호를 계속 받았다. 1년이 지나 다 자란 새들은 어린이 수준의 말을 했다. ‘세상에 이런 일!’은 입소문으로 퍼져 나갔다. 세상에 소개된 신기한 새를 사람들은 9명의 관리와 연관해 구관조라고 했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앵무새와 구관조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조선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이 점을 지적한다. 그 구절로 들어간다.

백낙천(白樂天)은 구관조인 진길료(秦吉了)를 읊은 시에서 ‘아롱진 빛깔은 푸르고 검다. 꽃 같은 머리는 붉구나’라고 했다. 진길료는 구욕새(鸜鵒)의 한 종류자. 설문(說文)에는 왜가리(鵙)와 비슷한데, 머리에 볏이 있다고 했다. ‘꽃 같은 머리’가 이것이다. 악곡(樂曲)에는 만세무인 구욕무(鸜鵒舞) 춤이 있다. 당나라 무후 때 궁중에서 기르는 새가 사람처럼 말을 잘하되 항시 만세(萬歲)라고 일컬은 까닭에 악을 만들었다.

통고(通考)에는 (중국의) 영남(嶺南)에 새가 있는데 구욕새 보다는 조금 큰 듯한데 말을 능히 한다. 영남 사람은 이 새를 길료(吉了)라고 했다. 당나라 현종 때는 (중국의) 광주(光州)에서 헌납한 새가 있었는데 앵무(鸚鵡)보다 더 예민하다고 했다. 북쪽 지방에서는 구욕새는 영남으로 넘어가야만 말을 능히 한다고 했으나 잘못 전해진 말이다.

사문유취(事文類聚)》에는 이 새를 앵무새 아래에 다 실어 놓아 구욕새와 구별하였다. 이는 중국 사람도 또한 자세히 분별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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