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인문학] 홍성재 박사의 모발 문화 탐험
모발은 인상을 좌우하고, 인생에도 영향을 미친다. 동양과 서양,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항산화제와 성장인자 도입으로 탈모 치료에서 한 획을 긋고 있는 홍성재 박사가 동서고금의 모발 문화 산책을 연재한다.
![]() |
<18> 임진왜란과 대머리
임진왜란과 모발은 관계가 있었을까. 조선을 황폐화 시킨 임진왜란의 시발점을 ‘혼노지의 변’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혼노지의 변’ 원인 중 하나로 인격모독설이 제기된다.
일본 전국시대의 실력자 오다 노부나가는 주변 사람의 외모를 좋지 않게 비유도 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원숭이로 불렀고, 아케치 미쓰히데에게는 대머리라고 놀렸다. 불만을 품은 아케치 미쓰히데가 오다 노부나가를 급습해 자결하게 한 사건이 '혼노지의 변'이다.
일본 역사에서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는 내전상태가 계속된 전국시대(戰國時代)다. 군웅할거와 하극상의 혼란은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정리가 되는 듯했다. 그런데 그는 일본통일 분위기가 무르익던 1582년 6월 2일 혼노지(本能寺)에서 부하 장수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기습 공격을 받는다.
아케치 미쓰히데는 오다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서부전선으로 행군하다 갑자기 말머리를 교토로 돌렸다. 그가 거느린 1만 여명 군사는 밤에 오다 노부나가의 숙소인 혼노지에 도착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낮에 유명 기사들의 바둑을 지켜보다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그는 칼을 뽑아들었지만 적은 숫자로 1만 여명의 반란군을 당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케치 미쓰히데는 정권을 잡지 못했다. 오다 노부나가의 또 다른 부하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2만4000여 병력을 몰고 와 1만2000여 명의 반란군을 제압했다. 새로운 실세가 된 그는 일본을 통일해 200년 가까운 혼돈의 전국시대를 마감시켰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로부터 원숭이로 불리는 모멸감도 받았지만 눈치 빠르게 처세했다. 실력을 키우던 그에게 아케치 미쓰히데의 배반은 일본을 움켜쥐는 거대한 행운이 되었다.

천민 출신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쇼군(將軍)은 되지 못했다. 대신 간파쿠(關白/관백) 칭호를 얻었다. 일본을 손에 넣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해외 정벌 야망과 쇼군들의 세력약화를 목적으로 일으킨 게 임진왜란이다. 따라서 임진왜란의 작은 시작은 ‘혼노지의 변’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사건이 없었으면 조선 침략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장수에 그쳤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케치 미쓰히데는 왜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하고 자결하게 만들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예수회 관여설 등 분분하다. 그 중의 하나가 인격모독설이다. 다혈질의 오다 노부나가는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모멸적인 언사를 가끔 했다. 술을 싫어하는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음주를 강요하고, 거부하면 “술인가, 칼인가”라며 입 앞에 칼을 대는 위협도 했다.
술자리를 피하려다 발각된 그에게 “대머리”라고 화를 내며 머리를 친 것으로도 전해진다. 대머리의 한자는 독(禿)이다. 공교롭게 아케치 미쓰히데의 미쓰(光)와 히데(秀)를 결합하면 독(禿)이 된다. 따라서 오다 노부나가의 대머리는 농담일 수도 있고, 모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픔이 있는 사람에게는 농담이 희롱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인격모독설이 사실이라면 ‘대머리’라는 한마디는 조선인에게 재앙을 안긴 전쟁의 시발점이 된 셈이다. <홍성재 웅선의원장>
[저작권자ⓒ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