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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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의원의 성추문과 조선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의사는 갑일까.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갑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갑이다. 신분제 사회인 조선시대에도 갑이었다. 모든 것을 의사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악용하는 의사도 있다.
2015년 8월 미국의 '내과학회보'(Annals of Internal Medicine)에는 익명으로 게재된 글들이 있다. 환자가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만한 의사들의 부적절한 처신 내용들이다. 중국이나 한국의 포털에서도 진료실에서의 갑의 을에 대한 바람직하지 못한 언행이 소개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의원 중에도 감언이설로 환자를 유혹한 사례가 있다. 세조 시절에 보성현에 꽤 알려진 의사 장덕이 있었다. 빼어난 실력의 그는 인근 몇 십리 안에 의원이 없는 지리적 이점까지 활용해 돈을 긁어모았다. 그러나 인격수양이 덜 되었던 모양이다. 독점적 지위를 악용했다. 갈수록 갑이 되었다. 특진 명목으로 많은 돈을 요구하고, 일반으로 접수하면 건성으로 진료했다. 환자들은 착취임을 알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수려한 외모의 여인이 오면 작업도 걸었다. 전문용어를 가장한 괴상한 말로 꾀고, 감언으로 유혹했다. 그녀들의 심장을 뛰게 한 뒤 농락했다.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여성을 희롱한 그는 관리들에게 상납도 했다. 튼튼한 안전장치를 한 그는 비리혐의로 고발되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억울함을 관에 호소한 피해자들이 무고를 한 가해자로 몰리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장덕과 관에 대한 원성이 고조되었다.
세조 2년인 1456년 이석형이 전라감사로 부임했다. 민정시찰차 지역을 순회하던 이석형은 강진의 만덕사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이곳의 부처는 지극히 영험하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집안에 환자가 있는 사람들의 공양이 그치지 않았다. 환자 가족들은 절에 머무는 동안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며 대화를 했다. 그들은 이야기 중에 의원 장덕을 성토하곤 했다.
관찰사 이석형은 사건 조사를 지시했다. 장덕의 죄상은 낱낱이 드러났다. 이석형은 그를 의법 처리했다. 감사의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이석형은 의원들의 갑질을 바로잡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는 대사헌으로 재직하던 1461년, 의학사에 길이 남을 한국판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작성했다. 의원이 바른 마음으로 치료하는 규범인 의원정심규제(醫員正心規制)를 제정, 전국에 훈시했다. 5년 뒤에는 팔도도체찰사로 전국을 순회할 때 직접 널리 알려 교화시켰다. 이는 세종의 뜻과도 같았다. 세종은 동양 최대의 의학사전인 의방유취를 집필하게 했다. 이 책에 당시 의원들의 그릇된 도덕관을 걱정하던 세종의 뜻이 담겨 있다. 내용은 의원정심규제와 비슷하다.
조선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인 의원정심규제는 김수온이 지은 식우집에 소개돼 있다. 의원정심규제는 다섯 항목이다.
하나. 의원은 의술의 갈고 닦음을 꾸준히 한다. 심사숙고하여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一 醫者 不殆硏究 深思熟考 勿爲失數之至)
둘, 의원은 환자의 조건이나 빈부고하를 차별하지 않는다. 진료에 정성과 최선을 다한다.(二 醫員 夫患者 何條件貧富高下 莫論 無次別待遇 診療最善 誠實爲主)
셋, 의술은 인술이다. 은혜로 베풀며 축재의 상술로 삼지 않는다.(三 醫術 仁術也 慈惠濟象 非商道 勿把蓄財之道)
넷, 의사의 길은 정직함이다. 진료를 통해 안 병과 환자의 부끄러운 내용을 발설하지 않는다.(四 醫道 正直診療中 病原因愆過 秘密保障 一切他方 不許發說)
다섯, 의사는 세상 사람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정성으로 대하고 교만하지 않는다. 치료를 빙자하여 다른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五 醫學者 世間之尊敬人 恒時 以聖心對人 不爲驕慢 治療憑藉 不許他方利用)
이석형이 지은 의원의 규범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와도 유사하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의사인 히포크라테스는 의료인의 윤리 지침서를 작성했다. 의사들이 학부시절부터 익숙한 히포크라테스 선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았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
하나, 나는 은사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둘, 나는 양심과 위엄으로 의술을 베푼다.
셋,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한다.
넷, 나는 환자가 알려준 모든 비밀을 지킨다.
다섯,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한다.
여섯,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생각한다.
일곱,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게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킨다.
여덟,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한다.
아홉, 나는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는다.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한다.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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