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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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60>공처가의 사랑과 당 태종 이세민이 두려워한 여인
공처가 중에는 역사 위인이 많다? 이 같은 가설은 성립할까. 더 나아가 ‘성 무능력자가 역사 위인이 될 가능성이 성 능력자 보다 더 높다’는 속설은 맞는 것일까. 두 주제는 시각에 따라 답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느 시각이든 단정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개연성의 끈은 놓지 못할 것이다.
성의학을 연구하는 필자는 개연성에 더 무게를 둔다. 먼저, 공처가의 성공 가능성이다. 공처가는 집안에서의 발언권이 약하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아내가 주도하면 집안에서 할 일이 적은 남편은 밖의 일에 더 신경 쓰게 된다. 또 집에서 말 잘 듣는 습관은 사회에서 경청 능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직장 등의 사회생활에서 더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공처가이기에 출세한 인물이 당나라 고종 때의 병부시랑 양홍무다. 그가 사령장을 받기 위해 궁궐에 왔다. 고종이 물었다. "고관직을 쉽게 수락했는데 까닭이 있는가." 양홍무가 말했다. “사나운 아내가 신을 겁박했습니다. 만약 병부시랑을 맡지 않으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수락했습니다." 황제는 웃으면서 "빨리 임지로 가 근무하라"고 했다.
다음, 성 무능력자의 위대한 업적 달성이다. 역사적으로 큰일을 한 사람 중 일부는 성적으로는 약점이 있었다. 인간에게 성은 본능이다. 움직일 힘만 있어도 성 문제에 관심을 쏟게 된다. 이 경우 다른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빼앗긴다. 그러나 성에 무관심한 사람은 다른 일에 더 많이 집중한다. 자연스럽게 큰 성취를 맛볼 수도 있다.
역사 속의 공처가가 방현령이다. 당나라 재상인 그는 태종 이세민의 ‘정관의 치(貞觀之治))’를 연 주역이다. 신생국의 기틀을 다진 그는 유독 아내 앞에서는 오금을 펴지 못했다. 청나라 이종오가 쓴 ‘후흑학(厚黑學)’에서 그 사연을 들어본다. 방현령의 아내는 투기가 심했다. 방현령은 항상 쩔쩔 맸다. 그는 늘 무서운 아내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태종 이세민이 그의 아내를 불러 겁을 주었다.
"그대 남편에게 첩을 한 명 선물하려고 한다. 그대가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만약 황제의 선물을 거절하면 독주를 내리겠노라.“ 이에 방현령의 아내는 ”신은 죽으면 죽었지, 첩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한 뒤 황제 앞에 있는 가짜 독주를 단숨에 마셨다. 태종 이세민은 뒤에 방현령에게 말했다. "나도 그대 아내가 살 떨리게 무서웠다. 하물며 그대는 어떻겠는가. 보기만 해도 겁이 나니 그저 말을 잘 듣는 게 유일한 방법일 것이오.“
방현령은 우리 역사와 관련해서도 의미가 있다. 그는 이세민의 고구려 침략을 적극 반대했다. 그가 이세민에게 쓴 고구려 침공 부당성의 글을 본다.
“폐하는 주변을 모두 정복했습니다. 유독 고구려만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임금을 시해했습니다. 폐하는 그 죄를 문책하기 위해 대군을 일으켰습니다. 진군하면 열흘이 안 돼 요동을 점령하고, 포로 수십만 명을 잡을 것입니다. 만족하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습니다. 고구려를 멸망시키려고 하면, 궁지에 몰린 그들은 죽음으로써 저항할 것입니다. 이것이 두렵습니다. 고구려 정벌은 명분이 없습니다. 전함을 불태우고, 소집한 군사를 해산해야 합니다.”
방현령의 반대를 묵살한 이세민은 안시성에서 고구려군에게 대패 한다. 방현령이 당시 고구려와 당나라 그리고 주변국의 정세를 정확히 읽은 것이다. 이 같은 정확한 판단은 공처가 방현령이 집안 대신 주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가 막무가내식 가부장이었으면 많은 일을 하지 못했으리라. 당시 국제 정세도 냉정히 파악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쯤 해서 궁금증이 솟는다, 방현령은 혹시 성무능력자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세민이 방현령에게 첩을 선물한다고 했을 때를 생각하면 그렇다.만약 방현령의 남성 능력이 없거나 약했다면 그의 아내는 이세민의 첩 선물에 대해 콧방귀를 뀌었으리라. 그녀는 남편을 독점하기 위해 독주를 마셨다. 방현령의 남성은 건재했다고 봐야 한다. 그는 성 무능력자가 아닌 공처가였던 것이다.
사실, 그는 자발적 공처가였다. 젊은 날에 그는 죽을 병에 걸렸다. 아내를 불러 당부했다. "내가 죽으면 과부로 살지 말고 재가를 하시오. 그 남자에게 잘 하시오." 눈에 이슬이 맺힌 아내는 커튼 뒤에서 눈알 하나를 뺐다. 그녀는 말했다. "나에게는 절대로 두 남자는 없소."
공처가는 남성의 입장에서 보면 그 삶이 답답하고 바보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세상의 삶은 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방현령과 양홍모의 예를 보아서는 분명 그렇다.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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