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김한결 기자] 4월 8일 국회에서 자원순환 산업의 방향성과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정책포럼이 열렸다. ‘제8차 자원순환정책포럼’은 장철민, 박홍배, 정준호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가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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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차 자원순환정책포럼 단체 기념촬영 |
이번 포럼은 “이재명 정부의 K-GX 전략: GR 산업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자원안보와 탄소중립 시대에서 재활용 산업의 역할과 정책적 한계를 집중 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GR(Good Recycled) 인증제도는 우수 재활용 제품에 대해 국가가 품질과 환경성을 인증하는 제도로, 재활용 제품에 대한 신뢰 확보와 사용 확대를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자원순환, 선택 아닌 생존 전략”…GR 산업 재조명
포럼 참석자들은 최근 국제 정세 불안과 공급망 재편 속에서 자원순환의 중요성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민경보 자원순환정책포럼 대표는 “원자재 가격 급등과 공급망 붕괴는 자원 확보 자체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임을 보여준다”며 “재활용을 통한 자원 확보는 더 이상 환경 문제가 아니라 ‘자원안보’ 차원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원자재의 약 98%를 해외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재활용 자원 확대는 사실상 유일한 대응 수단이라는 점이 부각됐다.

예산·홍보·제도 등 5대 구조적 한계
주제발표를 맡은 강흥윤 교수는 GR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인증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운영 예산이 정체되면서 접수 제한까지 발생해 기술 상용화가 지연되고 있다.
둘째, 국가 차원의 홍보 부족으로 소비자 인식이 낮아 수요 창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셋째, 재활용 제품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 특히 ‘회피배출 효과’를 반영하는 평가체계가 부재하다.
넷째, 조달제도에서 환경표지 대비 GR 인증이 불리해 공공시장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다섯째, 정부 전략 발표에도 불구하고 세부 실행계획이 미흡해 정책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강 교수는 “GR 산업은 수입 대체 효과를 통해 자원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핵심 산업”이라며 “국가 주도의 인프라 투자와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GR vs 재생원료 인증…부처간 논쟁
패널 토론에서는 GR 제도의 방향성을 둘러싸고 정부와 인증기관, 산업계 간 시각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맹학균 기후에너지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은 “글로벌 기준은 재생원료 인증 중심이며, 재활용 제품 자체를 인증하는 GR 제도는 해외에서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렵다”며 GR 인증제도의 출발점이 다소 모호해졌다고 진단했다.
맹 과장은 “GR 제도는 본래 재활용 제품이지만 품질이 나쁘지 않다는 점을 소비자에게 안심시키기 위해 만든 제도”라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한 번 버려진 것을 다시 만든 제품’이라는 인식 때문에 여전히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생골재를 예로 들며 “내 집을 지을 때 재생골재를 권하면 선뜻 선택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활용 제품이라는 점보다 품질이 우수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시스템이 소비자에게 더 받아들여질 수 있다. 탄소배출 저감, 물 사용량 절감, 생산과정의 오염물질 저감 등 녹색제품으로서의 가치를 부각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며, 재활용 자체를 강조하기보다 품질 경쟁력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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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측부터 유상열 산업통상부 산업환경과 팀장, 맹학균 기후에너지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 강흥윤 인하대교수 |
이에 대해 현장과 인증기관 측은 다른 시각을 내놨다. 자원순환산업인증원 측은 GR 제도가 해외에는 없는 한국 고유의 제도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들은 “1997년 우리나라가 원자재의 97%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던 시절, 재활용 제품이 팔리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품질을 인정해 준 것이 GR 제도의 출발”이라며 “국가 차원에서 재활용 제품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만든 제도인 만큼 그 역사적 의미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건설 분야를 중심으로 이미 GR 제품이 상당 부분 시장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강조됐다. 순환골재와 순환아스콘은 실제 도로 포장 등 건설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GR 제품에 대한 신뢰도도 상당히 높다는 주장이다.
민경보 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 회장은 “순환골재는 오히려 물성이 우수한 측면도 있다”며 “재활용 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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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미화 GCN녹색소비자연대 상임대표, 권대현 국토교통부 건설산업과 사무관, 이용현 국가기술표준원 인증산업진흥과장 |
국가기술표준원 측도 GR 인증 제품의 품질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이용현 국가기술표준원 인증산업진흥과장은 “GR 인증은 단순히 재활용 원료를 썼다는 의미가 아니라, 재활용 소재를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면서도 신품 대비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성능을 확보한 제품에 부여하는 것”이라며 “실제 조달시장에서 선택받기 위해서는 그 정도 수준의 품질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GR 인증 품목은 219개에 이르지만, 일반 소비자가 직접 접하는 품목은 화장지나 비누 등 일부에 불과하다”며 “나머지는 발포블록, 학생용 책상 상판, 파티클보드 등 산업 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제품이 많아 그동안 홍보도 조달시장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소비자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품목이 적었던 만큼 앞으로는 일반 시장으로의 확산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제도는 있지만 시장은 없다
GR 산업의 가장 큰 문제로는 ‘시장 미형성’이 지목됐다. 건설 분야에서는 순환골재 등 제품이 품질 기준을 충족함에도 불구하고 사용률이 낮고, 공공조달 역시 법적 의무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행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는 화장지와 비누 등 일부 품목에 국한된 제품 구조로 인해 시장 확장이 제한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 기업 대표는 “공공기관조차 구매 담당자가 며칠동안 자리를 비우고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이는 현장에 계신 여러분들이 공감할 내용일 것”이라며,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다른 참석자는 “공공에서 의무사용률이 있는데 이를 제품 수량이 매출량으로 집계하는 문제가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트린다”며, “건설 쪽 특히 순환골재와 같은 금액이 높은 물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실제 GR 제품을 구매하는 양은 매우 적다”고 지적했다.
즉 법은 존재하지만 집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구조라는 것이다.
“부처 간 분절 구조가 핵심 문제”…시스템화 필요
이번 포럼에서 가장 강도 높은 비판은 부처 간 협업 부재에 집중됐다. 자원순환산업인증원 측은 “30년간 부처 간 갈등으로 제도 개선이 지연돼 왔다”며 “자원순환 정책을 시스템화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국가 주도의 표준 구축 ▲평가 체계 확립 ▲법·제도 일원화 등 근본적인 구조 개편 필요성이 제시됐다.
GR 산업은 GX 전환의 출발점
좌장을 맡은 유미화 대표는 “GR 산업은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산업체계 전환의 출발점”이라며 “지금 논의하지 않으면 10년 뒤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공조달 중심 구조에서 민간시장으로의 확장 ▲소비자 인식 개선을 위한 국가 역할 강화 ▲제품 다양성 확대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이번 포럼은 GR 산업이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닌 자원안보, 산업 경쟁력, 탄소중립을 동시에 좌우하는 전략 산업이라는 점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동시에 제도 정체성 혼선, 부처 간 협업 부족, 시장 작동 실패라는 구조적 한계도 명확히 드러났다. 결국 이날 포럼의 핵심 메시지는 하나로 귀결된다. 재활용을 환경정책이 아닌 산업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 여부가 K-GX 전략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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