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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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12> 출생의 비밀 시대와 발가락
"이놈이 꼭 제 증조부님을 닮았다거든." "게다가 날 닮은 데가 있어." "어디?" M은 강보를 들치고 어린애의 발을 가만히 꺼내어 놓았습니다. "이놈의 발가락 보게. 꼭 내 발가락 아닌가. 닮았거든……." M은 열심히, 찬성을 구하듯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1932년 김동인이 동광 29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발가락이 닮았다’의 한 부분이다. 주인공 M은 학창시절 방탕한 생활을 했다. 직장을 잡았으나 생활이 곤궁했던 그는 서른두 살에도 노총각이었다.
그는 또 하나의 고민이 있었다. 생식능력이 없었다. M은 어느 날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생식능력 여부를 물었다. 며칠 후 그는 혼인을 했다. 2년 후 M이 의사를 다시 찾았다. 아내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침통한 표정의 그는 생식능력 여부 검사를 희망했다. 그러나 병원을 두 번이나 찾은 M은 끝내 검사는 하지 않았다. M의 아내는 아들을 낳았다. 반년이 지났을 무렵에 M이 기관지가 좋지 않은 아이를 병원에 데려왔다.
위의 대화는 M이 극구 아들과 자신의 연관성을 찾으려는 눈물 젖은 노력을 보여준다. 의사는 M과 아이가 조금도 닮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정심에 발가락은 물론 얼굴도 닮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지구촌 많은 곳에서 일부일처 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성적인 본능은 가끔 일탈로도 이어진다. 배우자 외의 사람에게 눈을 돌리기도 한다. 김동인의 소설은 아내의 외도와 남편의 불안감을 담고 있다. 외도는 인간사회를 비롯한 자연계의 공통현상이다. 새들도 눈 깜짝할 사이에 배우자를 속이고 바람을 핀다.
조류학자 스터치버리는 새들을 관찰한 결과 암컷이 수컷의 눈을 피해 간통하는 게 많음을 확인했다. 간통의 상대는 총각 새 보다는 유부남 새가 대세였다. 그것도 멀리 있는 낯선 새가 아닌 이웃에 둥지를 튼 옆집 아저씨였다. 암컷이 적극적으로 수컷을 찾아 나서기도 했고, 내연남이 내연녀를 방문할 때도 있었다.
배우자 외의 관계는 나이에도 큰 상관이 없는 듯하다. 2006년 한 신문사의 사회부 기자는 유전자 검사소 연구원에게서 통계자료를 받았다. 30∼40대 부부 80쌍이 친자 확인을 위해 유전자 검사를 한 결과 15건(약 20%)이 남의 아이였다. 결혼 후 외도를 한 부부가 많았다는 의미다. 결혼 전도 비슷했다. 20쌍의 대학생 커플이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그중에 2쌍(약 10%)의 자녀는 친자가 아니었다. 아이의 아빠를 모르는 '여대생 엄마'도 있었다. '여대생 엄마'가 사귀는 남자친구 이외에 또 다른 남자와 시간을 가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성 개방풍조는 필연적으로 친생자 확인 소송의 급증을 불러오고 있다. 2012년 친생자 확인이나 부인 소송은 5276건이었다. 10년 전의 2624건에 비해 무려 3배나 늘었다. 이는 유전자 검사의 높은 신뢰도, 간편성과도 관계있다. 친자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는 짧으면 10분, 길면 6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유전자 검사는 1984년 영국의 유전학자 앨릭 제프리시 교수가 개발했다. 유전질환이 가계(家系)에 전해지는 과정을 연구하다 의도하지 않은 유전자 지문을 찾아냈다. 발기유발제로 활용되는 비아그라 등이 강심제 치료 연구 부산물로 태어난 것과 같다. 친자 확인은 두 사람의 혈액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비교하는 게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이밖에 모근, 피부 등으로도 알 수 있다. 채취한 DNA에서 16개 부위(좌위)를 검사, 모두 일치하면 친자로 판정된다. 유전자 검사 외에 항원과 혈청의 반응을 보는 ABO혈액형이나 조직적합성 검사도 이용된다.
그렇다면 유전자 검사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친자를 확인했을까. 각 시대마다 나름의 방법이 있었지만 비과학적이었다. 조선시대도 과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조 때의 법의학서인 증수무원록에 친자 확인법이 실려 있다. ‘자식의 몸에서 뽑은 피 한두 방울을 부모의 해골 위에 떨어뜨린다. 친생(親生)이면 피가 뼈에 스며든다. 그렇지 않으면 스며들지 아니한다.’
세종 때의 신주무원록에서는 혈액응고 반응으로 친생자를 확인했다. 두 사람의 피를 물이 담긴 사발에 동시에 떨어뜨렸다. 피가 하나로 응결하면 친자, 분리되면 남으로 보았다.
두 방법 모두 의학적, 과학적으로는 근거가 미흡하다. 그러나 당시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도 출생의 비밀이 존재한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다. 지금처럼 출생의 비밀을 주제로 한 작품이 왜 없었을까.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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