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과 나라를 맞바꾼 장군의 사랑가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온라인팀 | eco@ecomedia.co.kr | 입력 2016-02-01 1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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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25>여인과 나라를 맞바꾼 장군의 사랑가
  

경국지색(傾國之色)은 나라를 기울게 할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다. ‘한서’에 나오는 경국은 한나라 무제 때 이연년이 지은 시가 출처다.

북방유가인 절세이독립(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일고경인성 재고경인국(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영부지경성여경국 가인난재득(寧不知傾城與傾國 佳人難再得).

북쪽 지방에 아름다운 여인 있어, 세상 벗어나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니 성이 기울고, 또 돌아보니 나라가 기우네. 어찌 성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망하게 함을 알지 못하는가. 아름다운 사람은 다시 얻기 어렵다네.


여인으로 인해 중원, 중국 대륙의 운명이 바뀐 사례들이 있다. 고대로부터 중국에는 경국지색이 많았다. 은나라 주왕의 애첩인 달기, 월나라 구천이 오나라에 보낸 서시, 당나라 현종이 사랑한 양귀비 등이다. 이 여인들은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다. 이 여인들보다 역사 속의 실체가 더욱 분명한 경국지색은 진원원(陳圓圓)이다. 중원의 주인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될 때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미인이 많다는 남쪽의 소주(蘇州) 출신이다. 길거리 장사를 하는 가난한 농부의 딸인 진원원은 일곱 살 어린 나이에 기녀로 팔려갔다. 몸값은 고작 은전 2냥이었다. 진원원은 12세에 궁중에 들어간다. 숭정제의 후궁인 전비(田妃)가 황제의 기쁨조를 전국적으로 뽑을 때 입궁했다. 빼어난 자색에 춤, 악기, 노래에 모두 뛰어났으나 황제의 눈에는 들지 못했다.


음기가 너무 강하다는 시각 때문이었다. 어의들은 그녀를 가까이 하면 황제의 몸이 상할 것으로 보았다. 진원원은 외척인 전굉우(田宏遇)에게 내려진다. 그녀는 늙은 전굉우를 시중들며 노래와 춤을 계속 익혔다. 하루는 전굉우가 명사들을 초청해 연회를 베풀었다. 진원원 등 기생들이 손님들에게 술과 노래를 서비스했다.


손님 중에 다음 날 전선으로 떠나는 장군 오삼계가 있었다. 하얀 피부의 젊은 장군 오삼계는 그녀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둘의 눈빛은 몇 번이나 교환되었다. 그녀의 고혹적인 눈매와 수양버들 허리에 허우적거린 오삼계는 다음날 거액을 주고 그녀를 데려왔다. 전굉우의 가기(歌妓)인 진원원은 오삼계의 첩이 되었다.


오삼계는 명나라 요동의 금주(錦州) 총병관 오양(吳襄)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 덕으로 계속 승진해 요동 총병이 됐다. 그는 부임지로 나서기 전날에 전굉우의 환송연을 받은 것이다. 오삼계는 진원원을 북경의 집에 남겨둔 채 요하를 건넜다. 오삼계는 산해관에서 청나라의 중원 진출을 거듭 막아냈다. 분전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전황은 청나라에 유리하게 전개됐다. 청나라 태종은 사람을 보내 거듭 투항을 종용했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된 명나라에서는 내란까지 일어났다. 이자성의 농민 반란군이 북경을 점령했다. 이자성의 부장인 유종민은 진원원을 탐냈다. 한때 전굉우의 수하였던 그는 원원의 미모를 잘 알고 있었다. 유종민은 오양으로부터 진원원을 빼앗아갔다.


황제가 자살한 가운데 오삼계의 아버지 오양은 이자성의 농민군에게 인질로 잡혔다. 북경 자금성 구원에 나서던 오삼계는 아버지의 귀순 권유 편지를 받는다. 5만 명 병력을 거느린 오삼계는 같은 무렵에 청나라 장수 다이곤(多爾袞)이 보낸 사람을 만난다. 청나라에서는 투항하면 번왕(藩王)으로 삼아 요동의 지배권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는 피난 온 가솔(家率)로부터 부친의 인질 소식, 애첩을 유종민이 가로챘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여자 한 명 보호하지 못한 게 어찌 대장부냐”라며 분노했다. 오삼계는 참모 3명을 청나라 장군 다이곤에게 보내 북경 공격을 요청했다. 오삼계의 5만 명, 청나라 15만 명 등 20만 대병력이 이자성을 공격했다.

6만 명에 불과한 이자성 군대는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자성은 북경을 철수하면서 오양을 비롯한 오삼계 가족 37명을 처형했다. 다만 오삼계의 추격을 늦추고자 진원원은 포로로 잡고 있었다. 오삼계가 나라를 배반하고 적국의 앞잡이가 된 데는 연인이 있었던 것이다. 연인을 되찾고, 연인을 능욕한 원수를 갚으려는 분노가 나라를 지키는 장군의 본분을 앞섰다. 그 결과 연인은 되찾았다. 그러나 아버지 등 가족은 몰살당하고, 나라는 망했다.

 
오삼계는 남서부 지역에 있던 명나라 잔존세력을 소탕한 후 공을 인정받아 운남 귀주 지방의 평서왕으로 봉해진다.
왕이 된 오삼계는 연인 진원원을 위해 거대한 건물인 금전(金殿)을 재건했다. 청동으로 된 기둥, 지붕, 문 등의 무게가 모두 200톤이 넘는다. 하지만 사랑도 식는 법이다. 오삼계는 다른 여인들을 찾으면서 진원원을 멀리했다.


연인과의 사랑을 위해,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나라를 버린 오삼계. 그는 한족에게는 명나라를 청나라에 넘겨준 역사의 죄인으로 치부되었다. 그런데 어쩐 일이지 요즘에는 재평가된다. 중국의 영웅으로 평가된다.

 
주변 민족의 역사를 중국화 하려는 중국의 역사시각 때문이다. 한족 이외의 주변민족의 역사를 자국역사화 하는 서북공정, 동북공정 등과 맞물려 오삼계가 영웅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미화해도 그는 연인에 빠져 나라를 판 인물이다.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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