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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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목소리 질병은 과도한 성생활 탓?
옛 선비들은 의학서적을 읽었다. 퇴계 이황, 서애 유성룡, 율곡 이이 등 당대의 내로라 하는 유학자들은 의학에 조예가 깊었다. 하지만 선비들의 의학지식은 한계가 있었다. 전문 직업인이 아닌데다 의학지식을 인격함양 차원에서 해석하는 시각 탓이다.
대학자 주변인 중 가장 힘든 사람은 왕이다. 임금의 스승이 된 학자들은 쉬지 않고 성군(聖君) 되기를 되뇌인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오욕칠정 자제를 요청한다. 낮에도, 밤에도 반듯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유학자들은 왕의 침실까지도 통제한다. 밤에 홀로 있어도 여색을 삼가하도록 진언한다. 그것이 성군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건강한 생명체는 이성에 끌린다. 젊은 왕은 밤에 여인을 생각한다. 그때마다 유학자들은 손을 내젓는다. 이들은 목적을 위해 의학지식을 아전인수로 해석도 한다.
임진왜란으로 명예가 실추된 선조는 질병을 달고 살았다. 쉰 목소리, 위장질환, 이명증, 구토 등 다양했다. 임금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 여파가 몸과 마음의 병으로 온 것이다. 임금 스스로 심증(心證)으로 진단했다.
그러나 학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어의들이 정확한 병명을 주저하는 데도 유학자들은 대담하게 결론을 내린다. 임금의 병 원인을 ‘성(性)’이라고 판단했다.
선조 6년 9월 21일 경연이다. 직제학으로 대궐에 돌아온 율곡 이이가 선조에게 직격탄을 날린다. 이이는 병을 이유로 사직했다가 한 달 전에 직제학으로 임명됐고, 이날 처음으로 임금을 뵈었다.
“소신이 병으로 오래 물러가 있었습니다. 오늘 옥음(玉音)을 듣습니다. 그런데 매우 통리(通利)하지 않으십니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이는 임금의 목소리가 쉰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는 곧바로 이유를 왕에게로 돌린다.
“듣건대 전하께서는 여색을 경계하는 말을 즐겨 듣지 않으십니다. 임금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청명하고 욕심이 적은 임금님은 여색경계를 망령된 말로 여기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색을 경계하면 더욱 조심하시고, 그런 말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왕의 쉰 목소리는 여색을 탐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임금은 “그대는 전에도 상소(上疏)에서 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나의 쉰 목소리는 여자와 관계가 없다. 사람의 목소리는 다양하다. 내 목소리는 원래 그랬다. 그런데 왜 의심을 하는가.”
이이는 물러서지 않는다. "전하의 초년시절에는 옥음이 낭랑하였습니다. 지금은 목소리가 바뀌었기에 감히 의심하였습니다."
사관은 이이를 ‘쾌직(快直)’으로 표현했다. 직설적으로 거침없이 말하는 게 쾌직이다. 임금에게 할 말 다한다는 의미다. 이이는 선조를 성군(聖君)이 아닌 성군(性君)이라고 정면 비판한 셈이다. 왕은 불쾌할 수밖에 없다. 선조는 언짢은 옥색(玉色)으로 화제를 돌린다.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오래 물러가 있는 채 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선조는 성군(性君)이었을까. 임금은 2명의 정비와 6명의 후궁을 두었다. 자녀는 14남 11녀다. 자녀를 54세까지 생산했다. 이로 볼 때 왕성한 성생활을 추측할 수 있다. 목소리는 성과 관계 가능성도 있다. 사춘기가 되면 호르몬 분비의 영향으로 남자는 굵은 저음, 여자는 고음을 내게 된다. 호르몬은 한의학에서 명문(命門)이라고 하는 부신에서 분비된다. 명문(命門)은 생명의 문이다. 유학자들은 생명의 통로인 이 문이 성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동의보감에서는 목소리를 신(腎)에서 나오는 것으로 규정했다.
도덕적 관점으로 세상을 읽은 유학자들은 성인군자가 되려면 성(性)과의 전쟁에서 먼저 승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시각은 변하지 않는 진리였다. 중국 전국시대의 이름난 의원인 의화가 진나라 왕 진후를 진단했다. 그는 한마디로 왕의 병은 여자를 절제하지 않은 탓이라고 했다.
그러나 유학자들의 선조의 병 진단은 무리일 듯싶다. 선조는 구토, 기절, 쉰목소리, 이명증 , 편두통 등 여러 질병을 보인다. 끊임없이 위장장애와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문제가 된 쉰 목소리에 대해 당시 어의들은 사물원(四物元)에 자신환(滋腎丸)을 처방한다. 이 처방에 들어간 약재는 숙지황, 백작약, 천궁, 당귀, 천마, 방풍, 백지, 황련, 귤홍 등이다. 보혈과 염증치료를 위한 목적이다. 또 폐와 심에 담열(痰熱)이 맺힌 것으로 보았다. 차가운 성질의 약재로 탕약을 했다. 사실 이이의 소견은 증상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당대의 대학자이지만 의학적 판단은 아쉬운 부분이 많다.
전체적으로 고려하면 선조는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다양한 질병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스트레스로 인해 질병을 달고 산 왕에게 신하는 ‘성생활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조는 율곡 이이의 이 같은 주장에 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까.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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