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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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53> 왕실의 스캔들, 형수와 혼인하고 이혼한 왕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허리케인을 몰고 온다. 작은 사건 하나가 역사의 거대한 태풍이 될 수도 있다. 영국 성공회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독립했다. 그 출발점은 왕실의 가면무도회다. 35세의 장년인 헨리 8세는 궁중무도회에 참여한다. 헨리 8세는 1509년부터 1547년까지 영국을 통치한 왕이자 아일랜드의 영주다. 궁중의 가면무도회는 얼굴을 가리고 춤을 추는 사교의 장이다.
이탈리아에서 15세기에 크게 성행한 궁중의 가면무도회는 프랑스로 전파됐고, 헨리 8세 때 영국에 상륙했다. 여러 명이 짝을 이뤄 춤추는 가면무도회는 얼굴을 모르는 상태이기에 더욱 호기심이 자극됐다. 또 익명성이 보장되기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동도 가능했다.
헨리 8세는 왕비 캐서린과 축제를 즐겼다. 혈기 왕성한 그의 가슴 한켠에는 공허함이 쌓여 있었다. 마흔을 바라보는 아내에 대한 불만이었다. 왕자를 낳지 못한데다 폐경까지 된 그녀와는 밤 생활을 멀리했다. 눈이 떨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왕은 왕비의 친정 배경을 의식, 무늬만 부부인 쇼윈도우 부부로 지낸다.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딸인 그녀는 신성로마제국 카를5세의 고모다. 두 나라의 왕을 지낸 부모에다 유럽 정치를 좌우할 강력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조카로 둔 여인이다. 헨리 8세는 그녀의 배경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무도회에서 공허함을 행복감으로 채워주는 여인을 보았다. 여성으로서 절정기에 이른 20대 초반의 앤 블릭이었다. 외교관의 딸인 앤 블릭은 당시 유행의 최첨단인 프랑스 궁정에서 교육을 받았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신분차이로 로마 교황청의 결혼승인을 받지 못한 채 왕비 캐서린의 시녀로 일하고 있었다. 까만 눈동자에 흑발의 동양적 외모의 미인은 프랑스 왕족들과 즐겼던 무도회의 정수를 런던에서 선보였다.
매혹적 몸매와 고혹적 눈매, 열정적 춤, 고품격 매너…. 왕은 세련미 넘치는 그녀에게 사랑의 입맞춤을 한다. 헨리 8세는 이미 그녀의 언니를 정부로 두고 있었다. 헨리 8세는 자매에게 추파를 던진 것이다. 앤은 왕의 유혹을 거절했다. 똑똑한 그녀는 언니처럼 그림자 여인으로 살지 않기로 작정했다. 왕자를 낳기를 원하는 헨리 8세에게 정식 결혼을 요구했다. 헨리 8세는 앤의 요구대로 왕비인 캐서린과의 이혼을 결심했다.
왕비인 캐서린은 원래는 형수였다. 형수를 아내로 맞은 왕은 20년 가깝게 살았지만 마음의 부담을 지울 수 없었다. 왕비 캐서린과 헨리 8세의 형인 아서 왕자는 15세 동갑 때 결혼했다. 그런데 얼마 후 왕자가 숨을 거뒀고, 캐서린은 청상과부가 되었다. 헨리 왕자는 당시 10세였다. 왕실은 헨리의 짝으로 캐서린을 점찍었다. 캐서린이 결혼은 했으나 처녀라는 미명아래 혼인을 추진했다.
이는 영국과 스페인의 동맹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정략결혼이었다. 헨리 8세와 캐서린은 공주 1명을 낳았다. 헨리 8세는 형수와의 혼인에 대해 양심의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폐경까지 온 그녀에게 대해 마음도 식었다. 마침 새로운 연인 앤은 왕비와의 이혼을 요구한다.
그는 왕비와의 이혼 결심을 한다. 교황청에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이혼 허락을 요청했다. “형제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는 구약성서의 조항을 들어 캐서린과의 혼인이 신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황청은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유럽의 초강대국인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눈치를 보며 거절했다.
3년간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한 헨리 8세는 정면 돌파를 생각했다. 잉글랜드 교회와 로마 교황청의 분리였다. 왕은 교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캐서린과의 이혼, 앤과의 결혼을 강행했다. 영국의 대주교 크랜머는 “왕과 캐서린과의 혼인은 ‘형제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는 성경에도 위배된다”며 무효를 선언했다. 헨리 8세는 일련의 과정으로 교황청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영국 성공회를 창립했다. 로마 가톨릭의 수도원과 교회를 해산하고 재산도 몰수했다.
그러나 헨리 8세는 왕자를 낳지 못한 새 왕비를 간통 혐의로 단두대에서 처형한다. 왕비의 심장이 멈추자 제인 시모어를 만났고, 그녀가 아들을 낳다 죽자 독일 여인 안나 폰 클레베와 결혼한다. 그러나 채 1년도 안 돼 결혼 무효를 선언하고 18세의 소녀 캐서린 하워드와 웨딩마치를 울린다. 그녀도 시종과 바람을 피운 혐의로 참수된다. 마지막 여섯 번째 아내는 두 번 이혼 경력의 캐서린 파였다. 그녀는 헨리 8세가 56세로 먼저 숨을 거둔 덕분에 이혼도, 참수도 당하지 않았다.
헨리 8세는 권력의 표상이고, 사랑의 화신이다. 권력과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형수와의 혼인을 하고 이혼도 했다. 또 왕비 시녀와의 혼인, 또 왕비 언니와 불륜 관계를 유지했다. 자매를 연인으로 두고, 정부로 두고, 싫증이 나면 이혼과 참수를 했다.
왕비와의 이혼을 위해 가톨릭 교황과 전면전을 벌인 그는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그의 행동은 사랑일까? 철없는 행동일까. 어떤 해석도 가능하다. 확실한 것은 그의 사랑놀이 노력이 영국의 성공회 독립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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