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집 살림을 한 남자의 기술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온라인팀 | eco@ecomedia.co.kr | 입력 2016-05-13 09:4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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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50> 두 집 살림을 한 남자의 기술
 
남자가 두 집 살림을 한다면? 둘 다 놓치기 십상이다.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잃는 게 세상 이치다. 이는 고구려 서정시에서도 읽을 수 있다. 유리왕이 지은 황조가다. 유리왕은 고구려 건국주인 동명성왕, 주몽의 아들이다. 용감한 건국군주의 왕자가 두 여인, 모두를 놓칠 수 없다고 부른 사랑 노래가 황조가다.

翩翩黃鳥 (편편황조) 雌雄相依 (자웅상의) 念我之獨 (염아지독) 誰其與歸 (수기여귀)
훨훨 나는 꾀꼬리는 암수 서로 다정하네. 지독히 외로운 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까.

유리왕은 용감한 군주다. 동명성왕은 부여에서 예씨 여인을 만나 임신시켰다. 동명성왕은 부여를 떠나며 여인에게 말했다. “사내를 낳으면 칠릉석 위 소나무 아래에 감추어 둔 유물을 찾게 하시오. 그 징표를 갖고 오면 아들로 인정하겠소.” 남쪽으로 간 동명성왕은 고구려를 건국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유리는 징표인 부러진 칼 한 조각을 찾아 고구려로 갔다. 그 칼을 동명성왕에게 바쳤다. 왕은 단검을 꺼내어 맞추어 보았다. 완연한 칼 한 자루가 되었다. 왕이 기뻐하여 유리를 태자로 삼았다.

이처럼 강인한 유리왕이 과연 사랑타령, 그것도 슬픈 사랑노래를 왜 불렀을까. 노래의 배경이 삼국사기에 실려 있다.

왕비 송씨(松氏)가 승하했다. 왕이 다시 두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한 명은 화희(禾姫)로 골천(鶻川) 사람의 딸이다. 또 한 명은 치희(雉姫)로 한(漢)나라 사람의 딸이다. 두 여인은 질투와 반목을 했다. 왕은 양곡(凉谷)에 동서 두 궁전을 지어 각각 살게 하였다.

한 번은 기산(箕山)으로 사냥을 간 왕이 이레 동안 궁을 비웠다. 그 사이에 두 여인이 다투었다. 화희가 치희를 욕했다. “너는 한(漢)나라 집 비첩(婢妾)이다. 그런데도 무례함이 극에 달했다.” 이에 치희가 치욕으로 생각해 제 고장으로 돌아가 버렸다. 왕이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 좇았으나, 치희는 돌아오지 않았다. 상심한 왕이 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마침 꾀꼬리가 모여 정답게 날았다. 왕은 치희 생각이 나 황조가를 불렀다.

유리왕은 고구려 여인과 한족 여인 모두를 사랑했던 셈이다. 그러나 두 여인은 한 남자를 두고 사랑전쟁을 했다. 사랑전쟁에서 진 치희가 고국인 중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왕은 치희에게 급히 말을 달려갔다. 하지만 연적에게 망신당한 치희는 유리왕의 청을 듣지 않았다. 뒤 쫒아온 유리왕은 만난 치희는 양자택일을 요구했을 것이다. 치희와 화희 둘 중의 한 명 선택 강요에 유리왕은 “셋이서 함께, 오손 도손”을 주장했을 것이다.

남자의 마음은 똑 같다. 두 여인을 모두 거느리고 싶다. 또 같이 부부로 산 여인인데 한 명만을 선택할 수도 없다. 그러나 여자 두 명이 한 남자를 해바라기 하는 게 쉽지 않다. 유리왕은 두 집 살림을 통해 두 여인을 곁에 두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두 여인을 똑 같이 배려하고, 관심 갖는 것은 쉽지 않다. 작은 관심의 차이나 사소한 실수가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

우연히 만난 한 아랍인의 이야기는 의미 있다. 20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여러 집 살림의 어려움을 공감하게 한다. 30대인 남자는 “우리는 일부다처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일부일처를 선호한다. 모든 아내에게 똑같이 공평하게 대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경제적 지원은 물론이고 잠자리까지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잠깐의 즐거움이지만 오래 될수록 부담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렇다면 유리왕은 치희와 화희를 공평하게 대우했는지 의문이 든다. 그렇게 노력한 듯하다. 화희가 치희에게 “신분 낮은 네가 방자하다”는 말을 한 데서 엿볼 수 있다. 고구려 귀족 출신인 화희 입장에서는 한나라 비녀 출신인 치희와 동등하게 대우 받는 것은 오히려 수모로 생각할 수 있다.


학자들 사이에서 황조가의 해석은 다양하다. 그 중의 하나가 고대사회의 축제에서 행해졌을 성적(性的) 의례다. 고구려 등에서는 봄 가을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 거행된다. 이때 남녀는 떼를 지어 노래와 춤을 즐겼고, 밤 깊은 숲 속에서는 사랑 행위도 나눴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같은 축제의 마당에서 남녀는 구애의 노래를 부르기 마련이다.

이 때 마음에 드는 처녀의 마음을 얻지 못한 남자는 슬픔에 빠진다. 사랑의 패배자가 된 남자는 다른 남성과 숲속으로 사라진 여성의 뒷모습을 볼 것이다. 그 아픔의 노래가 황조가라는 해석도 있다.

이 풀이가 맞을 수도 있고, 삼국사기 기록이 사실일 수도 있다. 문제는 한 남자와 두 명의 여자 등장이다. 한 남자에게 한 여자만 있으면 이 같은 슬픈 노래는 나오지 않는다. 한 사람을 차지하기 위한 사랑의 전쟁이 승리자와 패배자를 남기게 된다.


아, 남자들은 만족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일부일처제가 제일이다. 속 썩을 일, 머리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두 집 살림을 하려면 두뇌와 몸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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