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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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35> 매독 치료제는 신문 광고의 인기상품
매독신쾌제(梅毒神快制)가 무엇일까. 일제강점기 신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고다. 옛 신문은 국립중앙도서관의 디지털 자료로 쉽게 볼 수 있다. 옛 신문에는 생활밀착형 광고가 많았다. 1944년부터 1949년까지 발행된 독립신문, 대한독립신문, 독립신보, 민중일보, 조선중앙일보, 중앙신문 6종에는 3만4278건의 광고가 실려 있다.
빈도수가 높은 것은 매독신쾌제(梅毒神快制) 609건, 사루소당카-루 421건, 영제의원(永濟醫院) 154건, 대창양행(大昌洋行) 150건, 평양양화점(平壤洋靴店) 139건, 장춘각(長春閣) 108건 등이다.
매독신쾌제는 매독치료제, 사루소당카-루는 건강보조식품, 영제의원은 병원, 대창양행은 화장품, 평양양화점은 구두, 장춘각은 음식점이다. 매독치료제가 광고에 유난히 많은 것은 그만큼 환자가 많았음을 의미한다.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의 의사인 알렌은 1886년 정부에 환자 치료에 대해 보고했다. 첫 해 외래환자 1만460명이었다. 매독환자는 760명으로 7.3%였고, 200명 이상이 치료를 받았다.
매독 환자는 말라리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매독을 포함한 비뇨생식계 질환은 1902명으로 소화기계 질환자 2032명에 이어 2위였다. 당시에 성병이 만연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성병의 광범위한 확산은 소설에도 반영된다. 식민지, 근대화 등의 변화와 맞물려 성병은 근대성의 타락을 상징했다.
1932년 김동인이 발표한 단편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도 매독이 모티브다. 소설의 화자인 의사는 M의 친구다. 그는 M이 매독을 심하게 앓은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다. M은 매독으로 인해 생식능력을 잃었지만 결혼을 한다. 그런데 아내가 임신한다. 생식능력이 없는 M은 충격을 받는다. 자신의 자식이 아니지만 그는 “발가락이 닮았다”며 슬픈 몸부림을 친다. 의사인 친구는 차마 “닮은 데가 없다”고 말하지 못한다.
일제시대에 매독을 비롯한 성병의 확산은 구한말의 개항, 청일 전쟁 등의 전쟁, 치료약 부족, 공창제도 등 다양하게 풀이할 수 있다. 물론 성병은 예부터 내려왔다. 매독은 조선시대에도 잘 알고 있었다. 프랑스 군에서 처음 발병한 매독은 한 세기만에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탈리아 시인 프라카스토로(Girolamo Fracastoro)는 1530년 병명을 ‘매독(Syphilis)’으로 짓고, ‘매독 혹은 프랑스질병(Syphilis sive morbus gallicus)‘이라는 3권의 책을 저술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의 동양 3국에서는 1510년을 전후해 발생한다. 이수광(1563~1628년)의 지봉유설에 의하면 중국과 조선은 1510년 무렵에 매독이 유행했다. 일본에서는 1512년에 교토에서 창궐했다. 한국과 일본의 매독은 중국에서 전파됐다. 지봉유설과 오주연문장전산고, 마과회통 등에서는 매독인 천포창(天疱瘡)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천포창은 명나라 무종 때 중국에서 전염되어 왔다. 중국의 토착병이 아니라 서역(西域)의 질병이었다.
병은 후세에 새로 생겨난 예도 많다. 요즘(1613~614년) 열병(熱病)이 유행해 사망자가 속출한다.당독역(唐毒疫)이라 하는 질병으로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바이다.“
당시인들은 임진왜란 이후에 새롭게 생긴 매독이 서역에서 발생해 중국을 거쳐 온 것을 알고 있었다. 임진왜란 때 참전한 왜장 가토 키요마사도 매독 환자였다. 허균이 지은 동의보감의 제창(諸瘡)에서는 ‘천포창은 양매창이라고 한다. 남녀의 성생활로 전염된다. 모양이 양매와 같다. 화끈거리며 달아오르고 벌겋게 되어 진물이 흐른다. 가렵고 아프다‘고 묘사했다.
매독에 걸리면 예후가 극히 안 좋았다. 영조 때 학자인 성대중의 잡록인 ‘청성잡기’에 의하면 매독환자 열에 아홉은 죽었다. ‘지금의 당창(唐瘡)은 옛날의 양매창이다. 두 병을 치료하던 사람들이 염병에는 땀을 낼 때에 반드시 똥물을 사용하였다. 그래도 죽은 자가 열에 아홉이었다.“
극히 위험한 질병으로 치료약이 없자 황당한 속설도 보인다. 남자의 음경으로 치료하는 법이다. 이익의 성호사설에서 엿볼 수 있다. 이익의 종 한 명이 형리(刑吏)가 되었다. 그는 명 수사관으로 소문이 났다. 한 백성이 관에 호소했다.
“아들이 산중으로 납치돼 음경(陰莖)이 잘려 죽었습니다.” 비밀리에 수사에 나선 형리는 며칠 만에 범인을 잡았다. 그는 이익에서 범인 체포 과정을 설명했다. “사람들이 천포창을 음경으로 치료합니다. 마침 길에서 소변보는 자가 천포창이었습니다. 그를 엄하게 고문하여 자백을 받았습니다.“
이익은 혀를 찬다. “세상에 천포창 환자가 얼마나 많은가. 혹독한 형벌에 거짓 자백하지 않을 자가 얼마나 될까. 거짓 자백 후 억울함을 아무리 호소해도 소용이 있을까. 안타깝다.“
매독인 천포창 환자가 당시에 많았고, 사람의 음경이 매독 치료제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매독을 음경으로 치료한다는 내용은 아무 의학적 근거가 없다. 당시 매독이 주는 공포감이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한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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