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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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하룻밤 만리장성과 인스턴트 사랑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남녀가 짧은 기간을 함께 지내도 깊은 정이 든다는 의미다. 만리장성은 남녀가 관계를 갖는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하룻밤을 함께 지내면 평생을 같이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운우지정의 미묘함과 폭발력이다. 이는 체면 문화와도 관계 있다. 전통시대에는 정절이 목숨과 같았다. 사랑하든, 그렇지 않든 몸을 허락한 여성은 주위의 눈을 의식하게 된다. 그 남자에게 평생을 맡기는 것 외에는 선택이 없었다.
이 같은 문화는 남자에게 유리했다. 마음에 드는 여성이 마음을 열지 않을 때 쓰는 비상 수단이 있다. 이런 이유, 저런 이유를 대 함께 하룻밤을 지낸 뒤 동네방네 소문내는 것이다. 때로는 보쌈도 행해졌다. 순결을 잃은 여성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체념 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체면문화의 폐해이기도 하다.
우스갯소리가 있다. 목욕탕에 불이 났다. 샤워를 하던 사람이 알몸으로 긴급 탈출한다. 대중을 의식한 사람의 행위가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인은 얼굴을 가리고, 중국인은 생식기를 가린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한국인은 남의 눈을 의식한다는 유머다. 반면 중국인은 눈치보다는 실리를 추구함을 보여준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 문화는 두 나라가 다르다. 한국은 체면문화의 상징인 반면에 중국은 실용성에 기반하고 있다. 이 설화는 진시황과 연관 있다. 대륙을 처음 통일한 진시황은 나라의 운명이 궁금했다. 세상 이치를 아는 도사 등에게 앞날을 점치게 했다. ‘진나라는 호(胡)에게 망한다’는 점괘가 나왔다. 호는 오랑캐를 의미한다. 당시 중국의 멸망시킬 수도 있는 군사력의 이민족은 북방에 사는 흉노족이었다. 진시황은 흉노족을 막기 위해 장성을 쌓으라고 했다.
외딴집에 신혼부부가 있었다. 결혼 한 달 만에 남편이 만리장성을 쌓는 인부로 차출됐다. 산과 계곡이 깊은 곳에서의 공사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공사장에서는 배고픔과 사고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한 번 공사장에 가면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낮았다. 아내는 남편 걱정과 그리움으로 밤마다 바늘로 허벅지를 찔렀다. 하루는 외딴집의 문을 나그네가 두드렸다.
"날이 저물고 근처에 인가가 없습니다. 하룻밤만 지내게 해주십시오." 아내는 나그네를 받아들였다. 나그네는 젊은 여인에게 수작을 부렸다. “돌아오기 어려운 남편을 위해 정조를 지킨들 누가 알아줍니다. 인생을 즐겨야 합니다. 나와 함께 삽시다.” 아내는 조건을 말했다.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새 옷을 한 벌 보내고 싶소. 당신이 옷을 남편에게 전하고, 답장을 받아오시면 평생을 함께 하겠소. 이를 먼저 약속하면 몸을 허락하겠소.” 나그네는 흔쾌히 약속하고 여인의 몸을 탐했다.
다음날 아침 나그네는 옷가지를 받아 공사장으로 향했다. 수십 일을 걸어 산에 도착한 나그네는 남편을 만났다. 공사장에서는 작업복을 입는다. 새 옷은 공사장 밖에서 갈아입어야 한다. 인부의 수는 항상 일정해야 한다. 남편이 옷을 갈아입으려면 누군가 잠시 인부의 옷을 입고 공사장 안에 있어야 한다.
나그네는 남편이 옷을 입고, 편지를 쓸 수 있게 공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옷 속에서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내가 당신을 구하려고 이 사내와 하룻밤을 보냈소. 다른 남자에게 몸을 허락한 것이 께름칙하면 그곳에 계시오. 그러나 하룻밤을 무시할 수 있다면 지금 그대로 나에게 달려오시오.”
남편은 나그네를 공사장에 남겨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그네는 하룻밤 춘정을 불태운 대가로 평생을 산성을 쌓는 데 보냈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 설화에서 중국인은 실용을 택했다. 남편은 아내의 하룻밤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래서 공사장에서 탈출하고 아내와 행복한 삶을 살수 있었다.
설화는 한국에 상륙, 다양한 버전으로 진화했다. 나그네가 소금장수, 과객, 머슴 등으로 변했지만 줄거리는 비슷하다. 한국인은 이 설화에서 실용적 행동에 대해서는 눈 감는 경향이다. 오히려 정절을 내준 여인, 정조를 버린 아내를 받아들인 남편의 윤리성에 비판적이다. 아내를 열녀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룻밤 때문에 평생 억울하게 사는 나그네를 통해 욕정에 빠짐을 경계한다. 일을 할 때 신중할 것을 교훈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뜻이 언제부터 운우지정으로 변모했을까. 조선에서도 17세기까지는 남녀관계 의미는 없었던 듯하다. 정약용은 1820년에 쓴 이담속찬에서 '일야지숙장성혹축(一夜之宿長城或築)'이라고 했다. '비록 잠시 머물지라도 마땅히 주변을 경계하여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로 썼다. 미리 미리 대비하자는 뜻이다.
1855년에 조재삼의 송남잡지(松南雜識)에도 ‘일야만리성(一夜萬里城)’ 설명이 나온다. “이 말은 왜놈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하룻밤만 머물러도 반드시 성을 쌓는데서 유래했다. 요즘에는 남녀관계를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로 볼 때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의미는 18세기부터 하룻밤의 의미가 강조되면서 남녀의 운우지정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의 하룻밤은 만리장성을 쌓고, 평생 고락을 같이한다는 의미에서 인스턴트 사랑, 원나잇으로 변질되어가는 듯하다. 하룻밤을 지샜다고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하는 옛 이야기도, 쾌락을 쫓아 하룻밤 영혼 없이 즐기는 요즘 이야기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필자 가라사대, 사람은 오래 사귀고, 사랑은 진실해야 한다.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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