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를 위한 변명, 고자질의 유래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온라인팀 | eco@ecomedia.co.kr | 입력 2016-04-26 09: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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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46>고자를 위한 변명, 고자질의 유래
 
TV를 통해 한국사 강의를 들었다. 스타 강사인 설민석 씨의 강연 중에 흥미로웠던 게 고자질(告者質)의 유래였다. 설민석 강사의 설명 요지는 다음과 같다.

“내시는 어릴 때 거세돼 고자로 불렸다. 남성이 거세된 내시는 여성호르몬 분비가 늘고, 스트레스가 많아 일반 남성보다 말을 많이 했다. 이를 일컬어 고자질이라고 한다. 이 같은 내시의 고자질을 막기 위해 연산군은 특단의 조치를 했다. 입을 다물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몸이 어느 곳에 있어도 편안하다는 문구의 팻말을 내시의 목에 걸었다.”

강의를 듣는 순간, 고개가 세로로 끄덕여졌다. 동시에 고개가 가로로 가볍게 흔들렸다. 세로 반응은 감탄 행동이고, 가로 반응은 의문점 제기다.

역사에서 환관으로도 기록된 내시는 남성이 거세된 고자다. 생식기가 불완전하거나 없는 남자다. 한자로는 북 고(鼓)에 아들 자(子)를 쓴다. 북치는 남자로 직역할 수 있다. 북을 치면 소리가 난다. 주위에서 반응이 있다. 그런데 거세된 남자는 반응이 있을 수 없다. 열매가 잘 맺지 않는 메꽃을 한자로 고자화(鼓子花)로 쓴다. 역설적으로 반응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고자로 하지 않았을까.

이에 비해 고자질은 알릴 고(告)에 아들자(子)를 쓴다. 어떤 일을 알리는 사람, 어떤 일을 말하는 행동이라는 의미다. 뜻을 담은 글자인 한자로 보면 고자(鼓子)와 고자(告者)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나 설민석 강사의 주장이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고자질의 유래를 명확하게는 알 수 없다. 다만 여러 설이 있을 뿐이다.
대표적인 게 진시황제의 환관인 조고(趙高)와의 관계다. 조고는 시황제가 죽자 어리석은 호해(胡亥)를 황제로 세운 뒤 승상이 돼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그는 어느 날 호해에게 ‘사슴을 말’이라고 이야기했다. 호해는 “사슴을 가르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했다. 이것이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휘두른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다.

 

그러나 신하들은 조고가 두려워 말이라고 대답했다.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본 젋은이들은 앞 다퉈 조고의 아들(高子)이 되기를 희망했다. 금세 조고의 아들인 고자들의 목소리가 조정에 넘쳐흘렀다. 이로부터 고자질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는 설이다.

또 조선시대 창고를 관리하던 하급관리 고자(庫子) 유래설도 있다. 고자는 각 관청과 군영의 창고에서 군량미와 진휼미를 비축하고, 관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물화를 보관하는 창고를 관리하기에 부정도 발생했다. 이를 막기 위해 나라에서는 수시로 창고조사를 하고 불법행위에 대해 엄벌을 가했다. 곡식 70석 이상을 축내면 노비로 삼아 섬으로 보내고, 40석 이상 손실을 내면 곤장 100대에 유배형에 처했다. 또 환수조치도 했다.

 

세조실록에는 호조에서 전라도 남평현의 모자라는 황두를 전임 관리와 고자에게 징수하게 하는 내용이 나온다.
 "남평현의 전임관리가 국고(國庫)의 미곡(米穀)을 문부(文簿)로써 전(傳)하여 받았기 때문에 축이 난 황두(黃豆)가 3백 92석(石)입니다. 이미 지나간 관리와 고자(庫子)의 근무한 날수가 많고 적음을 상고하여 고루 징수하소서." 

고자는 창고의 재산에 민감했다. 수시로 재산상황을 위에 보고해야 했다. 정식 보고외에도 억울함의 하소연, 변명 등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하는 말을 고자질이라고 했다.

또 하나는 환관에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옛 나라, 특히 중국에서는 환관의 영향력이 대단했다. 환관정치를 했을 정도다. 환관이 비밀 말을 임금에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설민석 강사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설이다.

여기에 곧이곧대로 알린다는 의미도 설득력이 있다. 왕정시대에는 임금의 눈을 가리는 못된 신하도 꽤 있었다. 이때 바른 말을 하는 신하는 본 대로, 들은 대로 보고를 한다. 임금에게 사실을 알린다. 그러나 이처럼 알리는(告) 사람(子)을 다른 시각에서 보면 동료를 험담하는 무리가 된다. 비밀 이야기를 임금이나 윗선 또는 주위에 알리는 것을 바르지 않은 행동으로 여겼다. 동료 집단의 일을 몰래 말하는 내부 고발자 의미가 있다.

고자와 고자질에 대한 설은 다양하다.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기에 정설이 있을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남성이 상실된 고자의 삶은 불운하다는 점이다.

고자(告子)라는 이름을 가진 중국 전국 시대의 사상가는 타고난 생리적 현상을 성(性)이라고 했다. 식(食)과 색(色)을 성(性)으로 파악했다. 이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자연이 준 본능으로 보았다. 거세된 남자인 고자는 식욕은 충족시킬 수 있으나 성욕은 만족시킬 수 없다. 자연이 준 기쁨, 자연의 섭리를 즐길 수 없었던 시대의 희생자들이다.
고자질은 유래가 명확하지 않다. 내시와의 연관성은 확실하지 않은 설 중의 하나다. 그런데 사람들이 고자질을 내시와 연관된 것처럼 확신하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더 슬프고, 억울하지 않을까.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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