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양처 촉진대회 사연을 알아보니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9>
온라인팀 | eco@ecomedia.co.kr | 입력 2015-12-07 09: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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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9> 현모양처 촉진대회 사연을 알아보니


세상은 변한다. 사람의 마음도 변한다. 여성의 꿈도 변한다. 광복 이후 여성의 바람은 현모양처가 대세였다. 요즘은 자아실현이 많다. 과거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장래 꿈을 묻고 생활기록부에 적었다. 상당수 여학생은 당연하다는 듯이 ‘현모양처’로 답했다.

 

중년들이 청소년 시절에 최고 인기를 구가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후보들은 너도 나도 꿈으로 현모양처를 말했을 정도다. 고상한 품격을 유지하기 위한 응답이었다. 이 같은 경향은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현모양처(賢母良妻)는 지혜로운 어머니이자 선량한 아내다. 그러나 현모양처의 문화적 맥락은 여성의 자발적 의지 보다는 남성위주 전통시대의 산물이다. 고분고분하게 시집살이 잘하면서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 남편을 편안하게 해주는 게 여성의 최고 미덕으로 여겨진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원뜻도 다소 변한다. 요즘엔 살림과 육아를 잘하면서도 성적인 매력까지 갖춘 여인의 뉘앙스도 있다. 또 현모양처를 말하면 고리타분한 구석기 시대 유물로 취급된다. 2015년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들이 예능프로에서 장래희망 토크를 했다. 한 멤버가 현모양처를 이야기하자 다른 멤버들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라며 코웃음 너스레를 떨었다. 그 멤버는 "왜, 뭐가 어때서"라며 반문하지만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다.


지금 세상은 현모양처가 ‘말이 되는가’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지만 몇 십 년 전에는 여성의 로망이었다. 오죽했으면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현모양처 촉진대회를 열었을까. 1971년 6월 엄청 뜨거운 날 오후 2시다. 충청도 한 읍 소재지의 중심가에 주부 21명이 모였다. 먼저, 짧막한 당시 신문 기사로 사건의 대강을 보자.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단체로 재미 본 부인들, 현모양처 촉진대회 웬 말’이다.

21명의 아내가 원정탈선 했다. 21명의 가정주부가 남편들 몰래 00에서 00까지 신나는 ‘봄놀이 원정’을 다녀왔다. 이 수상한 들놀이가 남편들에게 들통 나 집단 이혼소송이라는 진기한 사태로 번졌다. 이에 당황한 탈선주부들은 6월 24일 오후 2시경 00읍 00에 모여 현모양처 촉진대회를 열고 5개 항목의 결의문까지 채택, 별난 신풍운동을 다짐했다.

주부들의 단체 풍기문란 파문이 인 것이다. 조신하게 잘 살던 여인들이 왜 일탈 했을까. 그녀들의 속마음은 알 수 없다. 다만 환경을 감안하면 ‘봄(春)이 주부들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요동치게 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사건은 봄놀이와 연관된 데서 알 수 있다.

 

날씨는 사람 심리에 오묘한 자극을 줘 종종 예상치 못한 결과를 빚게 한다. 봄이면 여성 마음이 더욱 흔들리고, 가을에는 남성 마음에 심하게 낙엽이 진다. 시인 김억은 여성이 취한 봄을 이지(理智)가 아닌 감정(感情)으로 설명했고, 유머강사인 방우정은 ’봄에는 여성이 결혼을 많이 하고, 가을에는 남성이 혼인을 주로 한다‘고 재치 있게 표현한다.

여성이 봄을 타는 이유는 따뜻한 햇빛과 바람 탓이다. 훈풍이 간뇌를 자극하면 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진다. 특히 봄은 여성에게 성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킨다. 봄 처녀의 가슴이 봄에 더욱 설렐 수밖에 없고, 봄에 여성의 옷차림과 화장이 화사해지는 배경이다.

음양오행으로 보아도 여성은 봄에 약하다. 봄은 목(木)의 기운이고, 가을은 금(金)의 성질이다. 목은 충전의 기운으로 만물이 솟음, 새싹의 움틈과 관계있다. 금은 수확 결실로 해석된다. 기운은 여성이 하기(下氣)이고, 남성은 상기(上氣)다. 봄은 솟구치는 경향이다. 하기인 여성이 물 만난 듯 생동하는 성향을 갖게 된다. 여성이 봄에 활동적이게 되는 논리다. 반면 가을에는 여름의 왕성한 상기(上氣)가 주춤해진다. 남성의 마음이 우울해지는 까닭이다. 그래서 봄은 여성의 계절, 가을은 남성의 계절로 표현된다.


경제사정이 극히 어렵던 1970년대 전후에 봄꽃 놀이를 할 정도면 지역사회에서는 지명도 있는 남편을 둔 사모님들이다. 모처럼 홀가분하게 바닷바람을 쐰 사모님들은 훈풍과 해방감을 만끽했다. 밤이 무르익자 사모님들은 카바레를 찾았다. 댄스홀에는 ‘늑대’ 들이 서식했다. 우리에서 나온 어린 양과 같은 사모님들을 '돌리고 돌리고'로 유혹했다. 외간 남자와의 춤에 허우적거린 4명의 여인이 인근 모텔로 사라졌다. 

 

그날 밤의 사건은 여인 모두가 ‘없었던 일’로 약속했다. 기억에서 지우기로 한 사건이 우연히 재생되었다. 한 여인의 남편의 논리적인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육하원칙 고문에 이실직고를 한 것이다. 

 

남존여비, 정조 관념이 강하던 지역사회의 명망 있는 인사들은 아내의 일탈에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됐다. 집안 망신에 분노한 남편들은 아내를 내치기로 하나 둘씩 의견을 모았다. 집단 이혼 위기에 몰린 여인들의 자구책 운동이 ‘현모양처 촉진대회’다.

 

여인들이 채택한 결의안에는 일탈의 원인인 세 가지의 해결책 다 담고 있다. 하나, 음주가무를 하지 않는다. 둘, 댄스홀에 출입하지 않는다. 셋, 여자끼리 들놀이 가지 않는다. 그때 그 사건은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40여년 전의 우리 이야기다.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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