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인문학] 홍성재 박사의 모발 문화 탐험
모발은 인상을 좌우하고, 인생에도 영향을 미친다. 동양과 서양,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항산화제와 성장인자 도입으로 탈모 치료에서 한 획을 긋고 있는 홍성재 박사가 동서고금의 모발 문화 산책을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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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베토벤의 모발과 머리카락 수사대
‘모발은 알고 있다. 네가 한 일을!’ 두께 0.1㎜의 머리카락에는 각종 정보가 담겨 있다. 마치 일상을 빠뜨리지 않고 쓴 일기장과 같다. 이는 모발이 뼈 다음으로 신진대사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몇 가닥의 모발을 분석하면 혈액, 소변으로도 알 수 없는 세포 깊숙한 정보를 읽을 수 있다.
모발의 표면은 큐티클로 덮여 코팅 효과가 있다. 큐티클이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모발을 보호한다. 강한 자외선, 젖은 모발, 열선 등에 오래 노출되면 파괴돼 머리카락이 푸석거리게 된다. 그러나 큐티클이 제 기능을 하면 모발이 건강해 삶의 정보가 고스란히 보존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국제 스포츠 제전에서 모발로 약물 복용 여부를 알아낼 수 있는 이유다. 수십 년이나 수백 년 된 모발을 분석해도 필수 미네랄 함량, 중금속 오염, 혈액형, 특정약물 복용 여부 확인이 가능하다. 머리카락이 잘린 모양으로 범행 현장 재구성도 할 수 있다.
수백 년 전의 비밀이 머리카락 몇 올로 밝혀진 대표적 사례가 베토벤의 죽음 원인이다. 1770년 독일의 본에서 태어난 베토벤은 서양 음악사에서 손꼽히는 작곡가다. 약 1500곡을 지었고, 위대한 음악가 의미인 악성(樂聖)으로 불린다. 베토벤의 주옥같은 걸작은 9곡의 교향곡, 음악의 신약성서라는 32곡의 피아노 소나타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는 성격이 괴팍한 편이고, 말년에는 지병으로 크게 힘들어했다. 귀가 들리지 않았고, 복통과 소화불량에도 시달렸다. 잠을 편안히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이유 없는 짜증도 늘었다. 우울증으로 자살 충동에 빠진 적도 있다. 그는 장과 간 질환, 황달 등으로 고생하다 1827년에 57세로 숨진다.
그가 두 동생 앞으로 쓰고 발송하지 않은 유서가 있다. 베토벤은 유서에서 질병의 원인을 죽은 뒤 부검으로 밝혀주기를 희망했다. 청력상실, 우울증, 간경화, 신장 질환, 폐 질환 등 ‘움직이는 병동’ 수준인 자신의 몸 상태를 죽은 뒤에라도 알고 싶어한 것이다. 당시 천재 음악가의 사인은 매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베토벤은 스스로 매독 정도가 아님을 생각한 듯하다. 매독은 합병증을 유발한다. 확실한 치료제도 없었다.
그런데 1999년의 시카고의 국립 아르곤 연구소는 ‘베토벤의 머리카락에는 납 성분이 정상인 보다 100배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수은은 중추신경계 이상을 비롯하여 정신착란, 발작, 근육 이상, 위장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베토벤이 앓았던 증상의 비밀이 다 풀릴 수 있는 키워드가 납 중독이었던 것이다.

머리카락을 분석하면 섭생, 질병은 물론 조상까지도 알 수 있다. 베토벤은 불과 20개의 모발 덕분에 매독 감염자의 오명을 187년 만에 벗을 수 있었다. 또 그가 궁금해 하던 사인을 알게 되었다. 베토벤의 모발은 당시 풍습 덕분에 전해질 수 있었다. 그 무렵 유럽의 일부에서는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 모발을 잘라 간직하곤 했다. 베토벤은 죽은 뒤 부검을 했다. 그날 유대계 15세 소년인 페르디난트 힐러가 베토벤의 시신에서 머리카락 한 줌을 잘랐다. 그는 유리상자에 머리카락을 넣어 보관했다. 모발은 그의 가족에게 인증서와 함께 전해졌다.
한동안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던 모발은 덴마크에서 갑자기 나타난다. 2차대전 중 덴마크의 민간인들이 박해를 당하는 유대인들의 스위스 탈출을 도왔다. 이 과정에서 덴마크의 의사 카이 프레밍에게 베토벤의 모발이 전해지게 됐다.
시카고의 아르곤 국립연구소에서는 모발을 정밀 분석했다.
이를 통해 베토벤은 당시 유행한 '마취성 진통제인 모르핀을 복용하지 않았고, 치료제인 수은도 거의 사용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반면 납 농도가 상상외로 높게 나왔다. 이는 질병과 사투를 하면서도 진통제나 수은을 거부했음을 의미한다. 또 매독을 사인으로 본 187년의 잘못된 역사도 뒤집게 되었다. 최첨단 모발 수사의 결과이고, 머리카락 수사의 개가다. <홍성재 웅선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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